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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12. 2018

샐러던트의 추억 3화: 쉬운 길은 없다

달콤한 성취를 위해서는 쓰디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내의 야간, 혹은 주말 수업을 듣는 대학원이 이제는 중요한 교육 제도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그래도 회사를 다니며, 혹은 다른 일을 하며 대학원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샐러던트의 현실은 대체로 비슷하다. 현실은 현실이고 기회비용은 중요하므로 직장을 그만둘 수는 없다. 그래도 석사까지는 어떻게든 꼭 하고 싶고, 이론과 현실을 연계시켜 실무에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승진에 도움이 될 지는 알 수 없으며 필수나 권장 사항 역시 아닐 수도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퇴근하고 대학원에 달려가고, 시험 때 휴가를 내는 직원이 반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자기계발이나 자아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화된 사람이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전자가 후자에 도움이 된다면 win-win 이겠으나 학위가 꼭 그를 돕는 수단은 아니다. 가뜩이나 요즘은 대부분의 조직에서 구성원의 학력 인플레를 우려하는 상황인데 기존의 직원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는 상황을 조직에서 환영할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학업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다면, 현재의 직장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이를 이룰 수 있는 파트타임 MBA 과정은 훌륭한 대안이다.


승진에 대한 야심이 있거나 학업에 크게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이 내게는 익숙한 일이었을 뿐이다. 시험을 보거나 진로를 변경할 것도 아니면서 수강한 수업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대개는 학업과는 거리가 먼 활동들이었다. 이왕 힘들거면 학교는 학위라도 남겠지... 정도의 생각이었다. 또한 입사동기들 중 유일하게 경영학이나 경제학 비전공자라는 사실도 늘 손톱 밑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모든 금융회사가 전공자를 우대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전공자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학부 전공이 소용 없다는 회의론도 많지만 그래도 관련 지식을 조금이나마 접해 본 사람과 문외한인 사람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샐러던트의 고역은 고강도의 수업이나 과제 때문이 아니라 앉아 있는 것 자체였다. 지적 허기는 충족되고 정신적 기쁨은 충만해지는 반면 체력은 빠른 속도로 고갈된다. 보통의 사무직 직장인들은 8시간 정도를 앉아 있다가 퇴근한다. 그리고 학교의 딱딱한 강의실 의자에서 또 3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 이토록 장시간 앉아있는 것 자체가 몹시 힘에 부쳤다. 수업을 마칠 때 쯤이면 긴장이 풀려 힘이 빠지고, 유난히 피로가 누적된 날이나 회사에서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는 날에는 좀처럼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기도 했다. 오랜만에 듣는 영어 수업은 또 어떤가. 혹여 교수님이 발표라도 시킬까 두려워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은 학부생 때와 다를 바 없었다. 잊고 있던 레포트, 페이퍼, 팀플, 퀴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학생의 신분을 상기시켜 준다.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아져도 학생은 시험이 싫다.
 
중간에 몸이 아파 수술과 입원 등을 하는 바람에 한 학기를 쉬었고,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일부러 졸업을 한 학기 미루었다. 마침 회사에서는 자기계발 휴직 제도를 장려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토플 시험을 보고 해외의 대학으로부터 교환학생 허가서를 받았다. 학교측의 승인과 비자까지 받았는데 부장님은 갑자기 휴직 승인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사측의 방침과 무관하게 자신은 승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퇴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낭패를 경험한 사람이 부서에 나 뿐만은 아니었다. 같은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 중 젊고 치기 어린 몇몇은 부장님에 대한 분노와 회사에 대한 실망을 참지 못하고 퇴사를 감행하기도 하였다.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 겨우 샐러던트를 졸업했는데, "그거 돈만 내면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타인의 결과물에 대해 훈수를 두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고, 그 목적은 평가절하를 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사람들은 일단 두 가지 면에서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첫째로 돈만 내면 할 수 있으나 그 돈조차 낼 수 없거나, 낼 용의가 없는 사람도 많다. 한 학기에 천만 원을 넘는 학비가 해외 유학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지 모르지만, 일반 직장인에게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회사에서 지원을 해 주는 경우가 아니고 자비로 다니는 이상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액수였다. 당신은 그 돈으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둘째로 돈만 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첫 학기에 힘들어서 휴학하는 사람들이 제법 속출한다. 이들은 대부분 졸업하지 못한다. 그래도 첫 학기를 온전히 마쳤거나 그 이후에 휴학을 하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이미 매몰비용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쌓였으므로(다시 말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에게 천만원 +@ 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포기하기보다는 완주하기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거기다 그 시간과 노력은 더 큰 인내와 희생을 요구한다.


 타인이 작은 것이라도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그 가치를 폄하하고 싶다면, 자신이 그것을 자신있게 깎아내릴 만큼의 성과를 낸 것이 있는지를 먼저 돌이켜 보는 것이 옳다. 대체로 더 큰 업적을 이룩한 사람들일수록 타인의 작은 성취를 격려하고 인정한다. 여기에도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첫째로는 자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그 자신감을 타인에 대한 존중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크든 작든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일정 부분의 고통과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만리장성을 이루는 것은 결국 축조에 들어간 돌들이고, 백사장을 이루는 것은 작은 모래알이 아닌가. 작은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결국 큰 업적이라는 것은 소소한 성취가 모여 이루어 지는 것이기에.


그리하여 표면적으로는 MBA 를 (근근이) 졸업한 외국계 금융회사의 직장인이 되기는 했다.
그리고 한 친구가 말했다.
"축하해! 이제 넌 여자 연예인들이 선호하는 MBA 출신 외국계 금융인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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