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그리고 꿈과 함께하는 느긋한 동행기
‘엄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가장 따뜻한 단어이자 가슴 찡한 단어, 이름만 들어도 먹먹해지는 이 단어를 무려 글로 써내려가는 작가가 있다. 필명도 심지어 ‘낯선 엄마’다.
우리가 입을 떼면서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단어,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일 정도로 낯익은 단어인 ‘엄마’, 하지만 엄마 앞에는 ‘낯선’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 이질적인 두 단어는 작가의 글을 통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울림을 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낯선 엄마’님을 통해 들어보자.
#. 젊은 날, 방황하던 날 잡아주던 건…
‘딸은 엄마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모든 사람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낯선 엄마’의 글쓰기에 한해서는 맞는 말일 것 같다.
글과 그녀와의 만남은 어머니가 주선했다. 어린 시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의 어머니다. 어머니가 받던 연애 편지는 대를 이어 딸에게로 향했다.
“어릴 때 엄마가 책을 읽고 글을 쓰시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아빠와의 연애 편지도 다 가지고 계실 정도였죠. 그래서 제가 일기를 쓰고 노래가사를 만들면 칭찬을 해주셨어요. ‘안네의 일기’를 넘어 안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도 주고 받을 정도였죠”
이후 그녀는 대학에 진학했고, 홀로 상경했다. 초등학생 시절 모의 재판에 참여한 후 법관의 꿈을 키우며 법대에 진학했지만, 주입식 공부와 맞지 않았다. 생애 첫 번째 중요한 고비였다.
“사법고시를 준비했지만, 고시책을 보는 중간중간에도 교재가 아닌 다른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이 지금 600편 정도 돼요.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좋았어요. 제 장점 중에 하나가 단념이 빠르다는 점인데,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하고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적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된 그녀. 막막한 고시생의 삶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바로 글이었다.
그렇게 사법고시 이후 그녀는 언론 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릴 수만은 없어 취업 준비도 병행했고. 그렇게 한 대기업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녀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사원이었다. 해야만 할 일 더미 속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기어이 해냈다. 그렇게 열정 충만한 직원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어떻게든 일을 해내고야마는 그녀에게 ‘일 못하는 직원’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되는 과다한 업무와 야근, 그리고 회사를 나와 집 현관문을 열며 시작되는 육아라는 또 다른 출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 금슬이 좋으셔서,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부모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막상 닥치니 일을 놓을 수 없더군요. 일을 잘 해내고 싶었어요. 일 못하는 직원이라는 낙인이 싫어서 아이는 아빠가, 그리고 할머니가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육아는 제 의지대로만 되는 일은 아니었어요”
#. 속도를 줄이니 보이는 것들
일과 육아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그녀는 네비게이션을 켰다. 그 네비게이션은 바로 ‘휴직’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꿈을 향해 줄곧 직진만 하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우회전, 좌회전, 유턴의 기회가 주어졌다.
앞이 아닌 옆과 뒤를 보는 법도 체득해 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운전석 옆에는 딸 ‘하이디’가 있었다.
“일과 육아에 치이면서 삶의 속도를 고민했어요. 열정 넘치게 어떻게든 일을 해내고야 마는 직원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무엇일까 고민이 되더군요. 일에 대한 성취가 반드시 행복과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면서 다른 속도로 살아보고픈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휴직이 준 열매는 낯설지만 달콤했다. 일에 방점이 찍혀 있던 ‘낯선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점점 낯익은 엄마가 되어갔다. 아울러,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도 덤이었다.
“휴직을 결심하면서 일을 잘 해왔던 것처럼 육아도 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일과 달리 육아는 내 의도대로만 흘러가질 않더군요. 그런 점들에 좌절하기보다는 글로 남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방법을 모색하고 싶었어요. ‘육아는 힘들어’가 아닌 내 아이의 성격과 기질을 이해하고 아이에게 맞는 육아법을 그려나가고 싶어요. 남편이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고 하는데 육아 글을 쓰면서도 그런 점들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웃음)”
그녀는 매일 딸 하이디에게 글을 남긴다. 어떤 날엔 손 편지를, 어떤 날엔 작은 선물과 함께 메모를 남기기도 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그녀는 어머니의 지혜를 거울 삼아 엄마라는 ‘낯선’ 길을 헤쳐나가고 있다.
“글을 남기고 브런치에 연재를 하고, 책을 내면 훗날 아이가 보겠죠. 계속 글을 쓸 계획이라 앞으로의 삶이 풍부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글 소재도 더 많아지겠죠. 그렇게 내 딸에게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잔잔하지만 큰 울림 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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