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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Feb 18. 2018

봄맞이 다이어트

설 연휴는 끝났고 봄이 온다


나의 ‘소울푸드’인 라볶이와 케이크.

.


겨울이 되니 입맛이 더욱 당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콤한 라볶이의 탱글한 면발에 감칠맛 넘치는 빨간 소스를 한껏 떠서 한입에 삼킬 때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만 같다. 맵고 짠 것을 먹었으면 단 것을 먹어서 중화시키는 것이 중용의 자세이다. 부드러운 생크림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비어져 나오려 하는 케이크가 제격이다. 마스카포네 크림, 커스터드 크림, 디플로마 크림, 바닐라 크림, 요거트 크림 등의 다양한 변주도 모두 환영이다.


자극적인 맛에 놀란 혀를 달콤하게 달래주는 것이 미덕이고 도리이거늘. 케이크의 시트는 녹아 없어질 듯 부드러워도 좋고 쿠키처럼 와그작 부서지는 식감이 있어도 좋다. 눅진하고 꾸덕한 초콜렛 케이크나 브라우니가 유독 당길 때도 있다. 말 그대로 진흙같은 머드케이크나, 초콜렛이 용암처럼 뿜어져 나오는 퐁당 쇼콜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몸은 날씬하고 지갑은 건장해야 하건만, 몸은 비대해지고 지갑은 왜소해지는 악순환이 또 반복된다.

부암동 스코프(SCOFF)



1월 1일에 새해 결심으로 '다이어트'를 빼먹었을 리 없다. 굳이 리스트에 올리지 않아도 default 값으로 존재하는 항목들 중 하나니까.


Default(내재) 값들은 필연적인 default(채무불이행)를 동반하고 소박한 결심은 연말이 되기도 훨씬 전에 파산을 맞으리라. 그러나 어쩌랴. 맛있는 것을.
'소울푸드'는 실상 영혼과 육체를 좀먹는 것을 알고 있다. 굳이 성분을 분석하여 분노하거나 자괴감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성인병과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나트륨과 당을 한꺼번에 다량 섭취할 수 있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으니까. 1일 권장량을 초과하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1일 운동량을 채우는 것은 고문과도 같은데 1일 섭취량을 넘기기란 이토록 쉽다니 조금 배신감도 든다.

빌즈(Bill's)에는 리코타 팬케이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밀가루에 가득한 글루텐은 하체비만을 견고하게 유지시키며 붓기가 지방으로 고착화되는 것을 돕는다. 단백질은 최소화하고 탄수화물은 극대화한 이 구성은 단기간 체지방 증가에 필히 효과적일 것이다. 이 음식들과의 친분을 단기가 아닌 장기, 일시적이 아닌 습관적으로 유지한 겨울 동안 자꾸만 나는 정신이 아닌 육신의 풍요를 경험한다.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모스크바의 기온을 제압한 서울의 2018년 1월 날씨는 실내에만 머무를 핑계로 충분했다. 이제 몸을 사릴 나이도 됐지 암. 외출을 자제하며 움직임도 최소화한 덕분에 스스로를 사육시키는 데에 충실했다. <수요미식회>같은 맛집 프로그램에 나왔던 '마블링 좋은 소를 기르는 방법'을 사람인 내가 굳이 실천할 이유는 없었건만.

현실남매.jpg


그런데 슬그머니 2월이 왔다. 마음껏 먹어댄 설 연휴가 지나자 백화점에는 봄옷이 나오려는 조짐이 보인다.
아뿔싸. 겨우내 옷에 숨겨 간신히 감춰왔다. 늘어나는 뱃살과 허벅지살, 어쩐지 후덕해진 얼굴, 숨쉬기 불편해진 옷들을 애써 외면해 왔다. 딱히 허기지는 것도 아닌데 꾸역꾸역 먹어대는 식탐은 무절제한 이성이 아닌 갑작스런 추위 탓으로 돌려왔다.


그러나 봄이 오고 있다.
낮은 길어질 것이고 꽃은 봉우리를 터뜨릴 것이며 옷은 얇아질 것이다. 더 이상 물러날 수도 은폐할 수도 없어졌다. 당신이 보아온 내 얼굴과 팔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수면 아래 숨겨온 지방층이 이토록 거대했음을 들켜서는 안 된다.

봄처럼 꽃처럼 태연히 미소를 흩날리기 위해 오늘부터 다이어트. 작심삼일 되겠지만 삼일 후 또 다이어트. 아 그러게 조금만 덜 먹지 그랬어.
소울푸드 안녕.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만, 헛헛한 영혼은 미란다커 사진으로 위로할게.
집안 가득한 군것질거리에서 슬피 눈을 돌리며 고대국가의 제사장처럼 외친다.
스토아 학파의 금욕주의, 내 식욕에 깃들라.

다이어트 자극사진이라 쓰고 부러움이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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