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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Feb 16. 2018

체중계는 죄가 없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 물론 체중계 너 말고.

내게는 체중계가 없다.


물론 갖지 못한 물건들은 더 많다. TV도 없고 전자렌지도 없고 에어프라이어와 트롬 스타일러(정말 갖고싶다!)도 없다.  면허는 있지만 자동차는 없으며 밥솥은 있지만 어쩐 일인지 쌀이 없...다는 것은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다. 하지만 지하철과 버스가 있으며 쌀은 쓱-시키면 된다. 물론 H사의 가방이라던가 지미추 구두 같은 것도 없지만 여기에는 많은 대체재가 존재하므로 비교 대상에 포함시켜서는 안 될 것 같다.

<네이버에서 찾은 이미지> 뚱때지라니... 떼찌.


그러나 내 평생 체중계라는 물건을 집에 들여놓은 적은 없었다.

가족 구성원이 모델 뺨치는 체형의 소유자들은 아니지만 딱히 체중관리가 필요한 사람도 없었다. 대략적인 눈대중과 옷의 불편함 여부로 식이조절의 필요성을 파악할 뿐이었다. 학창시절, 정확한 체중을 아는 것은 일 년에 한 번 있는 체력검사 때 뿐이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회사 건강검진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데 갑자기 친오빠가 어디에선가 선물로 받아왔다며 체중계를 들고 왔다. 내 참, 체중계 같은 것은 '선물'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이런 흉물스런 것을 주었는지 묻자 학회에서 경품으로 받았다고 하여 입을 다물었다. 하고 많은 경품 중에 하필 이런 것을 뽑다니. 능력자라면 능력자다.


내가 소중한 이유.jpg

갑자기 생긴 체중계의 존재에 당황한 어머니는 자꾸 딸에게 체중계를 가져가라고 했다. 요즘 인기있다는 '대륙의 실수' 체중계였다. 고녀석, 예쁘기는 했다. 차라리 기능이 없이 장식용으로 둘 수 있는 기기라면 가져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의 기능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기능을 알고 있는 한, 기기 위에 올라설 것이 뻔했다. 적어도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이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왠지 그것은 집안에 들어오는 순간 무언의 감시자가 될 것만 같았다. 심심하면 야식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과식으로 풀거나 하는 평범한 직장인에게 저 하얗고 맨들맨들한 기계가 강력한 텔레파시를 쏠 것만 같았다.

-지금 뭐 하고 있니.

-조금 전에 먹었으면서 또 뭘 먹는 거니.

-그래서 나를 당당히 마주할 수 있겠니.

...

아니, 없어. 없다고!

신나게 먹다 말고 그 녀석을 보면 마음이 상할 것만 같았다. 입맛은 상하지 않은 채 기분만 상해 오히려 더 먹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못해 체중계에 올라가 보았을 때 내 질량과 중력가속도의 곱에 스스로 좌절하여 또 다시 먹을지도 모른다. 아아 그래서는 안 되지 안 되고말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른(행복한) 돼지가 되기를 택했다.


체중이란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숫자의 지배 하에 살아간다. 키는 몇이며 아파트는 몇 제곱미터인지, 집값은 얼마이며 자동차 배기량은 몇 cc인지, 총자산은 어느 정도이며 이 중 부채비율은 몇 %인지, 연봉은 얼마이며 정년은 몇 살인지, 졸업한 대학의 순위는 몇 위이며 학점은 몇 점인지 등등... 어디 이 뿐이랴. 이름보다는 주민등록번호와 계좌번호와 카드번호와 고객번호와 동호수와 전화번호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게 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미 현대인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숫자에 종속된 채 살아간다. 여기에 체중이라는 불편하고 언짢은 숫자를 굳이 하나 더 얹을 필요는 없다.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라면 됐다. 지금 있는 옷들을 무리 없이 입을 수 있으면 괜찮은 것이다. 체중이나 BMI지수 같은 숫자의 잣대로 스스로를 평가하여 자신을 옭아매는 것은 불합리하고 비이성적인 행위일 뿐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내게는 체중계가 없다.


그런데 자꾸만 체중계를 사고 싶어진다. 큰일이다.

 

이것은 여름용 체중입니다.




인바디. 숫자가 너무 많으므로 아무것도 못 본 척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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