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은행나무)
원치 않는 것 일수록,
끔찍이 싫어하는 것 일수록,
죽어도 내 것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 일수록
더 확실히 대물림이 된다.
세상사 무엇 하나도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내 자식도 ‘나’ 라는 원인제공자에 의해
찬란한, 혹은 비참한 결과를 살아갈 수 있다.
이 섬뜩하고 시린 이야기 속에서도
‘엄마’인 나는
엄마로서의 나와 내 아이를 투영한다.
똑바로 살아야지.
군림하지 말아야지.
그 어느 순간, 그 어느 찰라에서도
‘사랑’으로 포장한 ‘폭력’은
절대 없도록 해야지.
나는 카메라플래시를 받으며 서 있었던 열두 살 이래로 허둥댄 적이 없다. 소년분류심사원에 다녀온 후부턴 분노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호감을 표해와도 관계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다. 안다. 놀라면 허둥대야 정상이다. 모욕당하면 분노하는 게 건강한 반응이다. 호감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인간적 도리다. 내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아저씨는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문장에서 '그렇게'를 떼어내라고 대꾸한다.
나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당황하고, 분노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곁을 내줘서는 안된다. 거지처럼 문간에 서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라도 일한 대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사는 나의 힘이다. 아니, 자살하지 않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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