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연 Jul 24. 2019

나는 왜 특히 너에게 공감할 수 없는가?

"하아~~~.........."


너는 땅이 지구 반대편까지 꺼질 정도로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기에 선뜻 입도 못떼고 그저 깊은 한숨만 퍼올리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혹시 어디가 많이 아픈가?

금전적인 어려움이 있나?

가족 중 누군가에게 큰 일이 생겼나?

남편이 바람을 피웠나?

네가 파놓은 한숨의 구덩이에 내가 자꾸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긴 한숨 끝에 내뱉은 너의 걱정은 놀라우리만치 평범하고 실망스러우리만치 사소한 것이었다.

그래서 또 미안하게도 나는 너의 걱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 하아~..... 진짜 요즘 이것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파...."


이렇게 시작하는 너의 예고편에 나는 잔뜩 긴장을 한 채 너를 만났다.

본편을 풀어놓기 전에는 언제나 깊은 한숨이 프롤로그처럼 붙었다.

나는 나름의 경청과 위로, 그리고 적절한 격려를 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매번 나의 준비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별 일 아니어서 솔직히 좀 화가 나기도 했다.


나도 안다.

사람의 힘듬은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인 것이어서 서로의 힘듬을 나란히 놓고  걱정이  크네,  걱정이 쓰잘데기 없네를 판가름   없다는 것을......

술만 마시면 마누라를 때려잡는 남편을 둔 내 친구의 중학교 동창의 앞집 사람도,

드라마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애교수준으로 만들어 버리는 상상초월 시어머니와 함께 사는 윗집 동생네 언니 친구도,

사업을 하는 족족 말아먹으면서도 그 다음 사업을 구상하는 남편 덕에 3가지 알바를 전전한다는 우리 할머니 옛날 살던 동네의 누구누구도,

벌써 찾아온 노안의 침침함에 맘 상하고 속 상한 나만 못하다.

그런거다.

안다, 나도.....


사람마다 감당지수가 달라 똑같은 일에도 누구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누구는 큰 폭풍을 맞이한 것 처럼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네가 내게 토로하는 그 걱정과 고민과 힘듬들이 네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일 수 있고, 빛이 사라진 듯 한 두려움일 수 있다.

그래, 나도 안다.

아는데........


그런데, 미안하게도......

이해는 가는데 공감은 되지 않는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을 남발하는 사람이다.

물론 거짓 공감은 아니다.

나는 그저 쉽게 젖어들고, 쉽게 이입되는, 공감에 쉬운 사람이다.

그런데 유독, 왜 너에게만은 공감이 샘솟지 않는 것일까?

왜 너의 상황은 나로 하여금 공감의 샘을 막아버리게 하는 것일까?


만날 때 마다 걱정거리를 주머니에 넣어 오는 너에게 면역력이 생겨버린걸까?

포옥~ 한숨을 쉬면, 사연은 들리지 않고 노래만 기다려지는 지루한 라디오를 켠 듯 한 기분.

영 재미없는 토론회에 억지로 앉아있는 방청객처럼 중간중간 아~, 음~, 어~ 적절한 리액션을 영혼없이 내뱉는 듯 한 기분.


충분히 공감치 못하는 나는 그래서 늘 네게 미안하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 너에게만 그런 사람이어서 더욱 그렇다.


내가 너에게만 공감하지 못하는 것에, 혹은 어느 부분에서 힘든건지 잘 모르겠는 너의 고민에 잘잘못을 가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겨우 그런 일로 고민을 하다니...!! 너 사실은 자랑하고 싶은 거 아냐?"


라고 따져 묻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반복되는 너의 순탄한 고민들에 몸둘바를 모르겠고,

유독 너에게만 반응치 않는 나의 공감능력이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속상하다.

자꾸 미안해서 속상하다.

사실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되는데 미안해서 자꾸자꾸 속상하다.

그래서 네가 또 한숨을 쉬면, 나는 또 공감버튼이 작동을 멈출테고, 또또 미안할테니, 또또또 속상하고 속상하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을.......

너와 내가 겪어온 시간이 다르고,

너와 내가 믿고 있는 신념이 다르고,

너와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다르고,

너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위한 방법이 다른 것을......


어쩌면 너는 또 내게 모아놓은 힘듬을 풀어놓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또 네게 공감 없는 맞장구를 늘어놓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네가 나의 공감이 필요 없는 걱정들만 쭉 해주었음 좋겠다.


"배 부른 소리 하고 있네, 이년아~"


라고 마음 속으로 툴툴거릴만큼 사소하기 그지 없고, 고민이라기 부끄러울 걱정들만 쭉 해주었음 좋겠다.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기 보다는 공감해 주지 못해 미안한 그런 걱정들만 계속 해주었음 좋겠다.


너의 무탈함이 나의 무심함으로 계속계속 증명되었음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득, 글이 쓰고 싶어 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