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창비)

by 소연




영혜.....

몸에 가해지는 물리적 학대만이 학대가 아니다.

배려 없는 섹스,
애정없는 시선,
책임은 없고 의무만 남은 결혼생활,
이기적인 무관심.....
조용함을 넘어선 적막도 때론 학대가 될 수 있다.

외부로부터의 학대를 내 안으로 끌고 들어와
자기가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타인의 학대를 벗어버리려 했던 영혜의 선택이
몸서리쳐지도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내가 그녀를 이해해서일까? 아니면,
그런 선택을 한 그녀의 덤덤한 아우라에 대한 동경일까?

어찌보면 답답하리만치 모든 걸 감내하는 인혜보다
훌훌 다 벗어버리고 모든 걸 놓아버린 영혜가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책 읽는 내내
설컹한 생고기가 씹히듯
입안이 비릿하다.

열손가락을 쫙 펴 하늘에 비춰본다.
나도 이 손을 바닥에 짚고 다리를 들어올리면
열 손가락 마디마디 실뿌리가 내려와 얽히고 섥혀
단단히 선 나무가 될 수 있을까?
기괴함을 넘어 아름답기까지 한 영혜의 자학이
사타구니 가득 붉은 꽃을 가득 피운 나무로 되살아난다.
초월하듯......
해탈하듯.....
그렇게......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 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p.156-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p.191-






독서모임에서 나눌 이야기를 정리하며
다시금 책을 흝어 보았다.

처음 읽었을 때보다 오히려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여, 첫 리뷰에서 다 담지 못한 내 생각과 나름의 해석을 보태본다.


1. 왜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는가?

단순한 죄책감이라기 보다는, 고깃덩어리와 자신(혹은 폭력 아래 놓인 모든 생물들)을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말, 행위, 생활 속에서 칼처럼 가해지는 수많은 폭력에 난도질 당하는 이들이 마치 도륙 당하는 고기 같다고 느끼며 영혜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폭력의 피해자인 줄 알았어.
그런데, 나 역시 가해자였어."


2. 왜 영혜는 나무가 되고 싶은가?

모든 '섭식'의 형태에는 '폭력'이 포함되어 있다. 섭식의 폭력을 주관하는 것은 '이빨'이다.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자르고, 찢고, 짓이기고, 갈아내는 이 폭력적 행위 끝에 미각충족의 즐거움이 있고, 포만감의 행복을 있다. 이빨을 사용한 섭식이야말로 생명 유지를 이유로 폭력을 정당화 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폭력적인 '이빨'을 사용하지 않는 섭식의 형태는 무엇일까? 살아있는 것들 중에 이빨을 사용치 않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나무"이다.


3. 그렇다면 영혜는 왜 거꾸로 된 나무의 형태를 떠올리는 것일가?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를 뒤집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로부터, 남편으로부터, 사회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모든 폭력에 무덤덤해지고 무감각해진 영혜는 사실 누구보다 예민하고 감성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폭력 아래 덤덤해진 현재의 자신을 뒤집어 본연의 자신을 꺼내놓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꽃은 가지 끝에서 핀다.
하지만 영혜의 꽃은 사타구니에서 피어난다.
피처럼 붉은 꽃이....
꽃이 피면 벌이, 새가, 나비가 날아든다.
그것들이 머물고 간 자리에는 열매가 맺힌다.
영혜는 남편과 감정 없는 섹스를 나누고, 임신도 미루고 있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강렬한 사랑과 격렬한 몸짓, 그리고 그 (진정한 사랑의)결실인 아이를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감의 남편이 아닌, 억눌려 잊었는지 잃었는지 모를 자신의 감각을 일깨워 줄, 매말라버려 꽃피지 못한 자신을 활짝 피워 줄 그런 사람과의 진정한 사랑을 말이다.


4. 영혜의 형부는 왜 몽고반점에 집착하는가?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겐 '순수'에 대한 동경, 혹은 '순수'로의 회귀가 예술의 최종 단계, 종착점, 끝판왕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것저것 많은 시도 끝에 결국엔 아무것도 없었던 초창기의 화풍, 기법으로 역행하는 작가들도 많다.
잠깐 반짝 주목을 받았던 미디어아티스트인 영혜의 형부에게는 '무능한 남편'이라는 또다른 직함이 있다.
가족 누구도 그에게 뭐라 하지 않지만, 주변의 시선과 쑥덕임까지 모른척 할만큼 그는 뻔뻔하지 못했다. 이제껏 보지 못한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자신을 향한 동정어린 동료들의 시선과, 왠지 모르게 미안한 가족들에대한 죄책감을 한방에 빵~ 날려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처제의 몸에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있단 소릴 들었고, 그것은 곧 순수를 향한 욕망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양 손 쓸 수 없이 타들어가 터져버리게 했을 것이다.
그는 처제를 범한 것이 아니라 순수를 탐했던 것이다.


5. 똑같이 폭력에 노출되어있는 인혜는 왜 모든 것을 감내하는가?

인혜의 모습은 대부분의 우리 모습과 닮아있다. 내가 이해하면 돼.
내가 눈 감으면 돼.
내가 참으면 돼.
내가 하면 돼.
내가.
내가...
나 하나 물러서 있으면 주변이 편해진다.
그래서 그것이 내게 부당하고 잔인하더라도 두 눈 질끈 감고, 입술 한번 꾹 깨문다.
그게 인혜고, 그게 우리다.
자신을 놓고 싶어도 인혜 손에 매달린 것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 대한 책임을 놓아버리는 게, 자신을 놓는 것 보다 더 힘들다, 인혜는.....

영혜는 자기 자신을 학대함으로 폭력에 반(反)하였다면, 인혜는 폭력의 희생자들(자신의 아이, 그리고 영혜)을 품어 안는 것으로 폭력에 반(反)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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