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애니북스)
한 프로에서 소설가 김영하씨가 극찬을 한 책이라고 한다.
절대로,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될 책이라고 했다 한다.
궁금했다.
깔끔하게 글 잘쓰고 분위기마저 매력적인 그가
그토록 극찬을 할 정도의 책이라니......
그래서 두번 고민 않고 샀다.
4권으로 이루어진 만화책.....
게다가 아이들이 그린 양 단순하기 그지없는 그림체라니.....
요즘처럼 디테일과 화려한 선빨을 자랑하는 웹툰시대에
이토록 아날로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만화책이라니.....
불륜도, 좀비도, 살인, 강간, 바이러스 이야기는 단 1도 없는
그저 저자의 증조부,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라니......
선뜻 손에 잡히지 않아 사놓고 책장에 모셔뒀다가
서너달 전에 1권을 펼쳐보았다.
아.......
이 책........
대단하다.......
이건 그냥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그냥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이것은 역사이다.
거창하고 위대한 역사 말고,
처절하고 억울한 역사 말고,
위인과 변절자의 역사 말고,
나와 같이 평범한 누군가의 역사.
위대한 역사의 밑바탕이 되고,
이름이 남은 훌륭하신 분들의 뒷받침이 된 사람들의 역사.....
"나 살아온 게 무슨 역사라고...."
라고 하셨을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작가의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책의 대부분이 함경도 사투리로 이루어진 점 또한 놀라웠다.
전반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사투리, 그 중 우리가 접할 수 없는 함경도 사투리를 이토록 생생하게 구연한 만화라니, 이것은 정말 대단하다는 걸 넘어 소중한 가치가 있는 만화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라고 후딱 읽힌다 생각하면 오산.
이 책은 한 챕터, 혹은 두세챕터씩 밖에 읽지 못한다.
그 짧은 챕터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가슴 속에 첫서리 품은 바람이 인다.
그럼 다시 그 챕터의 처음으로 돌아가
조금 전 보았던 그 그림들을 차분차분 꼭꼭 되새겨 다시 본다.
그리하여 이 4권을 읽는데 하루, 이틀이 아닌 서너달이 걸리게 되는 것이다.
나는 3달에 걸쳐 천천히 이 책을 보았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마지막장을 덮었다.
하지만 다시 책장 깊숙한 곳에 넣지는 못하고 있다.
왠지 다시 1권을 읽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역사가 돌고 돌듯, 나도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무한 도돌이표 반복하듯 읽고, 또 읽게 될 것 같다.
이야기는 작가의 외할머니가 시집살이 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된다.
그렇게 작가의 어머니 남매들을 낳고,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해방을 맞이하고,
좋은 시절을 보내는가 하다 다시 6.25를 겪는다.
유독 가족간의 정이 도타웠던 작가의 외가는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된다.
전쟁도 끝나고, 새마을 운동이 일고,
나라는 발전을 하지만 시국은 혼란스러웠다.
작가의 어머니는 그 모든 시절을,
우리의 근현대사의 중요 순간을 몸소 겪으셨다.
그 엄청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오로지 가족 하나만을 보고 묵묵히,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들......
버티고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르고 이해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알려고도, 알고싶어 하지도 않아 미안합니다.
나의 부모님이어서 고맙습니다.
작가의 어머니 이복동녀 여사님은 우리 시할머니와 연배가 비슷한 듯 하다.
우리 시할머니 역시 황해도 분으로 위안부가 되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이웃 동네 총각에게 시집을 왔고, 6.25 전쟁 때 피란을 나오셨다.
하지만, 할머니에게서 황해도 사투리를 들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조금 전 여쭤보니 할머니 사시던 사리원은 도시였어서 사투리를 많이 쓰지 않았다 한다.
그래도 조금씩 사투리를 쓰긴 했지만, 피란 나와 남쪽에 자리 잡고 산 세월동안 다 잊어버리셨단다.
가끔 할머니 사시던 메짓갈(할머니가 부르는 동네 이름. 말씀으론 메짓갈이라 하는데 표기로는 정확지 않다. 할머니도 그 당시 부르던 이름으로만 기억하지 글로는 써보지 않아 모르신단다) 이야기며, 북에 두고 온 친정 식구들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다.
그런데, 지명 몇 개 정도만 기억하실 뿐 동생 이름도, 정확한 동네의 이름이나 마을 구조도 이제는 다 기억이 안나신단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이복동녀 여사님은 대단한 재주를 가지셨다.
그 긴 세월동안 그 방대한 이야기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딸에게 물려주셨으니 말이다.
점심 밥상에 앉아 시할머니께 옛날 살던 이야기를 청해본다.
하지만, 듣는 건 된 시집살이 서러웠단 얘기와 개같은 시누이년들 얘기 뿐이다. ^^;
아무래도 <내 시할머니 이야기>는 영원히 나올 수 없을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