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김선형 역(황금가지)

by 소연



우리가 상상하는 대부분의 미래는 어둡다.

은하철도 999가 그랬고, 터미네이터가 그랬고, 1984가 그랬다.

애트우드가 그린 미래 역시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은하철도 999나 터미네이터나 1984의 미래가 검은색이라면,

애트우드의 미래는 짙은 빨강이라는 것.

검은 미래는 암울하다.

퍼석하고, 억압적이다.

빨간 미래는,

겉과 속이 다르다.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검은 미래든 빨간 미래든 어느 하나만 인정되는 미래는 불안하고 위험하다.



이 책은 너무나도 있을법 한 이야기라 더 소름이 끼친다.

읽는 내내 몇 달 전 읽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올랐다.

극단적인 종교 종파의 권력 아래 억압받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여인들....

부르카 속 그녀의 얼굴들이 빨간 시녀복을 입은 시녀들과 겹쳐보이다

책 후반부로 갈수록 파란 옷을 입은 부인들과도 겹쳐진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행되고 있을 '길리아드'적 만행.....

그래서 더 무섭고 가슴 아팠는지 모르겠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갖게 되고,

기계들이 각성을 하고,

더이상 망가질 자연이 없어지는 것 만이 두려운 게 아니다.

권력을 잡은 누군가, 혹은 집단이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졌는가가 정말 큰 두려움이다.



어떤 사람을 선봉에 내세우느냐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검거나, 빨갛거나, 어느 한 색깔에 치우친 집단이 권력을 잡도록, 혹은 빼앗도록 내버려 두는 것 역시 결국 우리의 책임이다.

나부터 치우치지 않는 것, 휩쓸리지 않는 것,

안으로만 굽는 팔을 바깥으로도 펴보며 선입견 없이, 편견 없이 살펴보는 것...

우리의 깨어있음이 미래를 단색으로도 만들 수 있고, 알록달록 컬러풀하게도 만들 수 있다.



이 소설은 페미니즘적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다.

성별을 떠나

잘못된 지배층에 의한 폭력과 억압에 희생당하는 피지배층의 이야기이다.

물론, 그 앞에 여성을 내세웠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시녀와 부인의 위치에 남자를 넣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동물을 넣어, 인종을 넣어, 연령대를 넣어, 국가를 넣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저 지어낸 이야기라 넘기기엔

생각해 볼 여지가 너무나도 많은 소설,

그래서 후속도 기대가 되는 소설.



미래는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얼마 전, 이 소설의 후속편으로 두번째 맨부커상을 수상하신 애트우드 여사께 박수를..... 우리 나라에도 어서 그 후속편이 출판되어 읽어볼 수 있기를.....






예사라는 건, 여러분이 익숙해져 있다는 뜻이야. 리디아 '아주머니'는 말했다. 지금은 보통으로 보이지 않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게야. 예사가 될 거야.

-p.63-
우리는 이제 아무런 느낌도 없어져 빨간 옷 뭉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우리는 아파한다. 우리 모두 무릎 위에 유령 하나씩을, 존재하지도 않는 아기를 하나씩 품고 있다. 흥분이 사그라진 지금, 우리는 저마다의 실패와 대면해야 한다.

-p.219-
어쩌면 이 모든 일은 통제의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가 누구를 소유하고,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해도, 심지어 살인을 해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던가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누구는 앉을 수 있고 누구는 꿇어앉거나 일어서거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드러누워야 한다는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누가 누구한테 어떤 짓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다 마찬가지라는 말만큼은 내 앞에서 하지 마라.

-p.233-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성스러운 그릇이자 걸어다니는 성배(聖杯)다.

-p.236-
갑자기 루크는 '우리'라는 말을 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한, 루크는 아무것도 빼앗긴 게 없었다.

-p.313-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버린 거야.

-p.313-
Nolite te bastardes carborundorum. 그 빌어먹을 놈들한테 절대 짓밟히지 말라.

-p.323-
내 삶이 견딜 만하다면, 그럼 그들이 저지르는 짓거리들이 다 정당화된다.

-p.325-
더 좋은 세상이라 해서, 모두에게 더 좋으란 법은 없소. 언제나 사정이 나빠지는 사람들이 조금 있게 마련이지.

-p.364-
뭐 하러 싸운단 말이냐?



그래 봤자 아무 소용 없을 텐데.

-p.388-
옳지 못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이 레드 센터에서 가르친 모든 것들, 내가 이제까지 저항했던 모든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한꺼번에 나를 덮친다. 고통은 싫다. 머리는 얼굴 없는 계란형의 천주머니가 되고, 두 발은 허공에 매달린 댄서가 되고 싶지는 않다. '장벽'에 걸린 인형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날개 없는 천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식으로든, 계속 살아가고 싶다. 내 몸은 다른 사람들 마음대로 쓰라고 맡기겠다. 그들이 내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나는 비굴하다.

처음으로, 나는 그들의 진정한 힘을 실감한다.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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