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창비)
책도, 작가도 너무 유명하여 외면했던 책.....
읽어볼까? 싶어 엄마 책장에서 꺼내왔다가 표절 시비에 또다시 처박아 버린 책.....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책장 어딘가에 묻힌 채 그냥 그렇게 슬어갔을 책......
일본 극우 작가의 소설을 감쪽같이 베끼고서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는 그녀의 소설을 손에 쥐고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막상 읽고 나니 '아, 이래서 신경숙, 신경숙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분하게도 올라왔다.
하필이면 내가 좋아하는 문체를 품고있다니.....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쓰여진 글,
어디 하나 서두르거나 늘어지지 않고
가슴 속 할 말을 꼭꼭 씹어 글자 하나하나로 뱉어낸 듯 한 그녀의 글들에
솔직히 가슴이 설레었다.
엄마.....
이 세상 그 누구에게나,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이름, 엄마.
태초에 생명이 시작되는 그 때서부터 언젠가 생명이 모두 사라질 그 날까지
끊임없이 대를 이어 불리어질 이름, 엄마......
너무 가까워 그저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이 이름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 나에게도 물려져 불리우게 되니
새삼 가슴 끝이 저리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난다.
나의 엄마가 소설 속 엄마와는 다를진대....
나 역시 내 아이에게 이 같지 않은 엄마일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이 한 단어에
(심지어 나는 그러한 경험도 없건마는)
연신 솟구치는 슬픔과 미안함을 주체할 수 없음이 참 신기할 따름이다.
그 시절 엄마들은,
그 시절의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을,
그리고, 나의 엄마는,
'엄마'로서 행복했을까?
나는 행복한 '엄마'인가?
이 소설 역시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그래도 읽으며 좋았고, 읽고 나서 저릿했다.
그래서 화가나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따뜻한 여운의 뒤끝이 찜찜하다.
책을 읽을 때의 설렘이
책을 덮고 나니 한숨으로 바뀌어 온다.
이 글 잘 쓰는 작가가,
쿨하고 멋지게 인정할 건 인정하고,
그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면....
그 다짐 위에서 다시금 자신만의 문장을 엮어
앞의 잘못들을 모두 상쇄할 만 한 멋진 글들을 지어낸다면.....
그렇다면 잘못한 자식에게 회초리를 들어 꾸짖은 후
빨갛게 상채기 난 종아리를 눈물로 쓰다듬는 "엄마"처럼
'오냐, 내 새끼.... 실수 할 수 있다. 이제부터 잘 하면 된다. 앞으로 똑바로 살면 된다~'
하고 품을 수 있을 텐데......
좀처럼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그녀가 참
아쉽고 또 아쉽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p.25-
(애석하게도 이 문장 역시 표절 의혹이 있다. ㅠㅠ)
엄마라는 말에는 친근감만이 아니라 나 좀 돌봐줘, 라는 호소가 배어 있다. 혼만 내지 말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옳고 그름을 떠나 내 편이 되어줘, 라는. 너는 어머니 대신 엄마라는 말을 포기하지 않았다.
-p.27-
어떻게 엄마를 이렇게 혼자 두는가, 누가 엄마를 거기 헛간에 내버리고 간 듯 너의 의식에 분한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인간이란 그렇게 이기적이다. 그 순간 너는 엄마를 헛간에 내버린 사람이 따로 있기라도 한 듯 노여움을 느끼며 분개했으니 말이다. 너의 엄마를 헛간에 혼자 둔 건 다름아닌 너이기도 한데.
-p.31-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엄마가 과연 부엌을 좋아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p.68-
너는 내가 낳은 첫 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 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아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눈도 안 뜨고 땀에 젖은 붉은 네 얼굴을 첨 봤을 적에...... 넘들은 첫애 낳구선 다들 놀랍구 기뻣다던디 난 슬펐던 것 같어. 이 갓난애를 내가 낳았나..... 이제 어째야 하나..... 왈칵 두렵기도 해서 첨엔 고물고물한 네 손가락을 만져보지도 못했어야.
-p.93-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데.
-p.94-
내가 신고 있는 굽이 다 닳아버린 파란 슬리퍼를 벗고 싶어. 내가 입고 있는 먼지투성이 여름옷도. 이제는 나도 이게 나인지 알아볼 수 없는 이 몰골에서도 벗어나고 싶어. 머리통이 깨지는 듯하고나. 자, 얘야. 머리를 들어보렴. 너를 안고 싶어. 나는 이제 갈 거란다. 잠시 내 무릎을 베고 누워라. 좀 쉬렴.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아라. 엄마는 네가 있어 기쁜 날이 많았으니.
-p.223-
미안하구 미안허요.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랬고, 얼마 후엔 그래선 안될 것 같아 그랬고, 나중엔 내가 늙어 있었소이. 당신은 내게 죄였고 행복이었네. 난 당신 앞에선 기품있어 보이고 싶었네.
-p.234-
나는 걸을 수 있는껏 걸었네. 아파트 사이를, 풀숲 언덕길을, 축구장을 걷고 또 걸었네. 그렇게 걸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였나.
-p.253-
내 새끼. 엄마가 양 팔을 벌리네. 엄마가 방금 죽은 아이를 품에 안듯이 나의 겨드랑이에 팔을 집어넣네. 내 발에서 파란 슬리퍼를 벗기고 나의 두 발을 엄마의 무릎으로 끌어올리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p.254-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언니, 언니는 엄마를 포기하지 말아줘, 엄마를 찾아줘.
-p.262-
오빠는 엄마의 일생을 고통과 희생으로만 기억하는 건 우리 생각인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오히려 엄마의 일생을 보잘것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오빠는 용케도 엄마가 항상 입에 달고 지내던 말을 생각해냈다. 엄마는 조금만 끼쁜 일이 생겨도 감사허구나! 감사헌 일이야! 라고 말했다. 엄마는 누구나 누리는 사소한 기쁨들을 모두 감사함으로 대신 표현했다. 오빠는 엄마의 감사함들은 진심이었다고 했다.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해했다고. 감사함을 아는 분이 일생이 불행하기만 했을 리 없다고.
-p.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