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 예찬
바늘을 잡은 손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코 끝 날렵한 바늘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 잽싸게 실을 채어 끌고 나온다.
바늘은 다시 실을 몸에 감고 아까 채 온 실의 고리 속으로 미끄러지듯 빠져나온다.
그렇게 실은 꼼짝없이 엮이고 엮여 시간의 한 조각이 된다.
머릿 속이 시끄럽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나는 뜨개질을 한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년 전, 우연히 코바느질을 접한 후
나도 모르게 심란할 때면 바늘을 잡았다.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무념무상의 행위 뒤에 남게 되는 유형의 결과물이 좋았다.
그렇게 모자도 뜨고, 목도리도 뜨고, 가방도 뜨고......
이제는 심플한 옷도 뜰 정도가 되었다.
한 때는 십자수에 푹 빠져
밥상만 봐도 당구대를 떠올리는 남자들 처럼
누워서도 십자수 도안을 생각했더랬다.
청록색 실과 흰색실을 멋지게 섞어
바다를 좋아하던 그 당시 남자친구에게
파도를 수놓은 핸드폰줄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또 한 때는 퀼트에 미치기도 했다.
마감 시간의 동대문 천시장을 돌며
샘플용 천을 가득 담은 대형 쓰레기봉지를 찾아 두 봉지나 주워 온 적도 있다.
서로 다른 조각천들을 모아다
지갑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고, 파우치도 만들고.....
밤 잠 안자고 거실 바닥에 앉아
작은 바늘로 밤새 바느질 하는 딸을 보며
엄마는 질색팔색을 하셨었다.
"바느질 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했어!
엄마는 네가 쭈그리고 앉아 바느질 하는 거 진짜 보기 싫다!"
엄마의 걱정에 코웃음 치며
조각천을 몇 날 며칠 잇고 또 이었더랬다.
지금은 뜨개질에 미쳐있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털실을 사 모은다.
인터넷에서 예쁜 뜨개소품을 보면
어림짐작으로 떠보기도 한다.
생각처럼 안 떠져 기본으로 다섯번 이상은 풀었다 다시 뜨지만,
결과물은 항상 나름 기대 이상이다.
누군가가 그걸 보고 탐을 내면
기꺼이 선물로 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실 갖고 있는 완성품은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손으로 꼼지락 거리는 걸 좋아하는가보다.
십자수도, 퀼트도, 코바느질도
사부작사부작 꼬물꼬물 꼼지락 활동의 3대장 아닌가!
그림그리기도, 책읽기도
한 자리에 앉아 손으로 시간을 녹이는 것이니
지금 나의 후덕함이 이해가 간다.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은 쉽다.
이제 마흔이 넘은 나는
더이상 십대 때 처럼 일각이 여삼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눈 한 번 깜박이면 하루가 가고,
숨 한 번 쉬고 나면 한 달이 갔을 정도로
속절없다.
이렇게 미끄러지는 시간이 그저 내 삶에 없었던 것 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까워
멍하니 앉아있을 때면 뜨개질을 한다.
한 올 한 올 엮을 때마다
기다란 실은 시간처럼 쌓여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땀땀마다 묶어둔다.
지난 여름은 아들의 빳빳한 모자로,
추웠던 겨울은 작은아버지의 목도리로,
올 해의 시작은 내 절친들의 가방으로,
지루하고 조심스러웠던 올 봄은 친한 동생의 딸 백일원피스로.....
이렇게 하나하나 나의 시간이 흔적이 되어 공유된다.
그냥 흘러 잊혀졌을 나의 어느 시간대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게 좋아서,
그게 너무 좋아서,
내 시간의 조각조각들이 내 지인들에게 조금씩 남아있을 것이란 게,
그렇게 기억되고 또 기억될 것이란 게 좋아서
자꾸만 바늘에 실을 감는다.
단순한 반복작업에 심란한 마음은 잔잔해지고,
의미없이 흐르는 시간에 의미가 더해진다.
Inner peace....
Inner peace....
고요한 밤이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