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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May 16. 2020

우물이 열렸다


내 안의 우물이 열렸다.


우물은 깊고, 어둡고, 축축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이 우물이 열리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우물은 몰래 지켜보다 헤드샷을 날리는 스나이퍼의 총알처럼 예상치도 못한 어느 순간 핑~ 하고 열린다. 우물이 열리면 그 다음 부턴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어김없이 그 안으로 빠져들어 깊이, 더 깊이 내려가고 만다. 우물 속에 도사리고 있던 우울이라는 귀신이 잡아끌 때도 있지만, 때론 내 스스로 지구 중심까지 파고들 것 처럼 바닥을 파고, 또 파내려가기도 한다.


처음엔 주변이 싫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동네도, 도시도, 나라도, 점점점점 구역을 넓혀가며 싫은 이유가 떠오른다. 숨막히는 아파트가 싫고, 사람 많은 동네도 싫고, 경쟁 가득한 수도권이 싫고, 서로 물어뜯기 바쁜 이 나라도 싫고........ 어디 한적하고 자연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시골로 옮겨볼까 하는 마음에 부동산 사이트에 들어가 연고도 없는 지역의 주택들을 검색해본다. 그러다 곧, 거기가 어디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없다는 생각에 좌절한다.  


그러다 이번엔 사람이 싫어진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심지어 내가 잘 모르는 그냥 그 누군가도 밑도 끝도 없이 싫어 죽겠다. 왜 날 이해못하는거지? 왜 내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그 때 그 표정은 뭐였을까? 왜 항상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거야? 혹시 날 무시하나? 날 싫어하는 거 아냐? 내가 우스운가? ......... 온갖 미움과 불안과 걱정과 의심이 머릿속을 휘휘 저어놓는다. 옛날 옛날 고리짝 적 오갔던 대화까지 소환하며 그 당시 내게 건넨 그 말의 숨은 의도와 의미까지 추리하고 또 추리해 본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 끝에 결국 무인도가 아니고서야 커뮤니티에서 벗어날 수 없단 결론에 도달하면 또 다시 울컥 자괴감이 치민다.


위의 단계들을 거친 후 마음이 말랑해지면, 자기혐오가 날 선 발톱을 한껏 휘두른다.

내가 싫어! 내가 싫어! 이렇게 생겨먹은 것도 싫고, 이런 성격인 것도 싫어! 그 때 그 말을 하지 못한 것도 짜증나고, 그 때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것도 짜증나! 너무 예민했던 것도, 너무 둔감했던 것도, 너무 쿨한 척 한 것도, 너무 화끈한 척 한 것도 모두모두 짜증나!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한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기어이 한 것도 다 짜증나! 그냥 이 모든 게, 이렇게 살아지고 있는 내가 미치도록 짜증나고 싫어!

말랑했던 마음은 터진 풍선의 파편처럼 맘 속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다.


그런 다음엔.......

눈물샘이 터진다.

우물 속에서 터진 샘이니 쉽사리 마르지도 멈춰지지도 않는다. 마른 땅에서 갑자기 치솟는 샘이라면 한바탕 쏟은 후 한 숨 한번 깊게 들이마시면 끝날텐데, 깊고 깊은 곳에서 퐁퐁퐁 소리없이 차오르는 샘이기에 요란스레 울어지지도 시원하게 내질러지지도 않는다. 그저 퐁퐁퐁, 아무 생각 없는 눈에서 쉼없이 흐르고 또 흐를 뿐이다.


오늘, 나의 우물이 열렸다.


이런 갑작스런 우물이 나는 너무나도 싫다. 한번 빠지면 1단계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어쩜 그리 매번 똑같은지......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도 없다는 것이 더 힘들고 슬프다.

결국, 우물에 들어 간 건 나이기에 나오는 것도, 다시 우물을 닫는 것도 나의 몫이다.


뜨개질을 하루 종일 했다. 아이에게 밥 차려주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10시간 정도는 한 것 같다. 뜨개질은 자꾸만 싫은 것들을 떠오르게 하고, 내가 못난 사람임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힘들었고, 그래서 괴로웠다. 목도 뻐근하고, 허리도 아팠다. 눈도 침침하고, 손끝도 부어올랐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힘들고 아팠다.

하지만, 이런 단순노동이 때론 우물에서 나갈  있게 하는 밧줄이 되기도 한다. 단순 노동이 불러낸 단순 사고는 바닥에 바닥을  후에야 비로소 희망이 되어 올라오기 때문이다. 오늘 내게는 뜨개질이 그러했다. 물론 뜨개질 10시간으로 우물에서 가뿐히 탈출할 수는 없다. 이제 겨우 바닥을 파내려가던 것을 멈췄을 뿐이다. 내일은  영화만 10시간  수도 있고, 읽혀지지도 않는 책을 읽으려 10시간을 책과 씨름  수도 있다. 그렇게 며칠이  수도 있고,  주가  수도 있다. 분명한 , 어찌됐든  빌어먹을 우물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오롯이  힘으로. 언제나처럼  혼자서.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깊은 우물 하나씩 갖고 산다. 아무리 밝아보이는 사람도,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도, 세상 낙천적인 사람도, 세상 활달한 사람도, 각자의 우물 앞에선 별 수 없는 울보가 된다. 어떤 사람은 우물을 꼭꼭 숨기고, 어떤 사람은 대놓고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우물 근처에 얼씬도 않고, 어떤 사람은 수시로 우물 앞에 선다. 어떤 사람은 우물에 빠졌을 때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어떤 사람은 방법을 몰라 발버둥을 치고, 또 어떤 사람은 스스로 들어가 뚜껑을 덮어버린다. 이러나 저러나 우물 앞에선 다들 힘들긴 매한가지고, 결국 혼자 힘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나는 아직 우물 안에 있다. 하루종일 비관과 절망의 바닥에서 뒹굴다 이제 막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우물 밖 하늘을 바라본다. 내가 없어도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내가 없어도 나뭇가지는 잘도 뻗는다. 문득 내가 없어도 여전히 아름다운 세상이 치사하고 억울하다. 그래서 일어서본다. 그래서 올라가본다. 티격태격해도 우리 나라 만 한 곳이 없고, 벅적벅적해도 우리 동네만큼 살기 편한 동네가 없다. 그 때 그 사람은 별 뜻 없이 말 한 거고, 그 때 그 사람은 생각없이 행동한 거다. 나는 이만하면 꽤 괜찮은 사람이고, 관계는 아니다 싶으면 끊어버리면 될 일이다.


몇 시간, 혹은 며칠 후 나는 우물 밖으로 나올 것이고,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일상을 살아 갈 것이다.

그리고 되뇔 것이다.


"우물은 우물일 뿐이야. 결국 나는 나올거고,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을거야. 그 뿐이야. 그 뿐인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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