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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Jun 02. 2020

눈이 부시게

내 친구 K와 M에게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다.

몇 년 전에 했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평이 아주 좋았던 드라마였다.

나는 방영 당시에도, 종영 후에도 보지 못하다 엊그제서야 넷플릭스를 통해 보았다.

뭐든 꽂히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이 12회짜리 드라마를 이틀에 걸쳐 다 보고야 말았다.


드라마 속 한지민은 반짝반짝 예뻤고,

동일인을 연기한 김혜자님은 더없이 사랑스러우셨다.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그 역할을 연기한 배우의 이름인 것도 재밌었고,

나오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전혀 어색함 없이 어우러지는 것도 좋았다.

웃고, 울고, 웃고, 울고.....

혼자서 쌩쑈를 하며 본 이 드라마가 내내 마음 속에서 맴을 돈다.


사실, 우정이 중점인 드라마는 아니다.

그렇다고 우정이야기가 아닌 것도 아니다.

극 중 혜자의 절친 현주, 복희와의 우정은 물론

요양원(떴다방) 어르신들과의 관계도 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혜자는 팍팍하고 외롭던 현실 속에서도 반짝일 수 있었다.


이 멋진 드라마의 어느 한 장면 예쁘지 않은 장면이 없지만,

내 마음 속에 팍! 꽂힌 한 장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혜자를 찾아 온 그녀의 절친들......

병실에서 혜자를 위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주고,

휠체어를 끌고,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산책을 나가는 노년의 친구들....

이 한 장면이 가슴에 팍! 꽂혀 캡쳐해 두고 한참을 보았다.




내게는 세상 둘도 없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절친들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터 친구였으니 올 해로 30년도 더 넘은 우정이다.

처음엔 함께 어울려 자주 놀다 보니 친구가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엔 학교가 서로 달라 자주 못만났지만,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 방학마다 꼭 만나 시간을 보냈다.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서부터는 겨울마다 겨울바다를 보러 갔었다.

그 때만 해도 이 친구들은 오랜 시간이 부여해 준 시간적 절친이었다.

이 친구들 보다 오래 된 친구들은 없었기에,

그저 다른 어느 친구들 보다 오래 된 친구들이기에......

만나면 그저 웃음이 났고, 그간의 밀린 근황 얘기에 속얘기는 할 틈도 없었다.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한 번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러다 의도치 않게 함께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우리는 시간을 넘어 바닥까지 다 까 보인 찐 절친이 되었다.


 


2001년, 유럽에서의 우리



"나 회사 관두고 올 여름에 배낭여행 가려구."


K의 말에 M은 내게 전화를 했다.


"K가 올 여름에 배낭여행 간대! 나도 갈 거니까 너도 준비해!"


그러고는 M이 가장 먼저 사표를 던졌다.

2001년, 26의 우리는 함께 백수가 되었고, 함께 여행을 떠났다.

46일의 여행동안 우리는 처음으로 싸워보았고, 처음으로 서운했으며,

처음으로 서로의 속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 누구와도 비교불가의 진짜진짜 내 친구들로 여전히 내 옆에 있다.






나이가 들 수록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세상에서 사람 만나는 게 제일 좋고, 친구 사귀는 게 제일 쉬웠던 나였다.

그런데 요즘엔, 사람 만나는 게 편치 않고, 친구 사귀는 게 두렵다.

있던 인연들도 정리를 하게 된다.

사람 만나는 게 무서운 겁쟁이가 되어 가는 건지,

이런 저런 성격의 사람들이 영 못마땅한 꼰대가 되어 가는 건지......

그러다 보니 점점 오래도록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이 자주 올라온다.

나의 별별 꼬라지를 다 보아 온 그들,

내가 특별히 뭐라 변명하지 않아도 나의 치부에 너그런 이유를 대 줄 수 있는 그들,

나의 나약함에 재수없을 정도로 충고해 주고,

나의 힘듬에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내 주는 그들,

나의 기쁨에 제 일인 양 기뻐해주다가도

혹여 그로인해 오버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한 방을 날려주기도 하는 그들......

내 곁에 이렇게 든든한 절친이 있다는 게

거듭 고맙고, 감사하고, 또 고맙다.






아이는 쑥쑥 잘도 큰다.

아이가 커 갈수록 나는 나의 노년을 상상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의 손을 벗어나게 되면......?

- K랑 M이랑 여행다녀야지.


아이가 결혼해 가정을 꾸려 나가게 되면....?

- K랑 M이랑 놀러다녀야지.


내 머리가 하얗게 세고 무릎이 시큰시큰 아파올 때가 되면.......?

- K랑 M이랑 같이 병원다녀야지.


아이들 출가한 집에서 적적하고 외로우면.......?

- K랑 M이랑 한 동네 이웃집 살면서 고스톱도 치고, 국수도 삶아 먹고 그렇게 살아야지.



나의 노년엔 온통 K와 M 뿐이다.

이런 나의 노년 로망에 드라마 속 세 친구의 모습은 어쩌면

상상 속 나의 미래에 대한 데자뷰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장면이 이토록 가슴에 남는가보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서인지,

요즘에 비가 자주 와서인지,

마음이, 기분이 자꾸만 바닥을 향해 가라앉는다.

한번 가라앉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파내려가는 나 이기에

요 몇 주가 혼자 힘들고, 혼자 슬펐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맛있는 거 먹고 예쁜 찻집 가서 향 좋은 차도 마시자!"


내 친구들 목소리가 귀에서 쟁쟁하다.

그 목소리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환해지는 걸 보면

이들은 내게 비타민이요, 영양제요, 아침햇살이요, 맑은 공기인가보다.


곧 K의 생일이다.

조심스럽지만 우리는 만날 것이다.

맛있는 맛집, 예쁜 찻집은 못 가고, 아마도 누군가의 집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그래도 함께 먹으면 산해진미요, 함께 마시면 최고의 카페인 것을.....

생일 주인공은 K겠지만 선물은 내가 받을 것이다.

그녀들이라는 에너지와 엔돌핀으로......


이렇게 매년 함께 나이 먹으며

눈부신 노년을 같이 걸어갈 것이다.

때론 싸우면서, 때론 욕하면서,

그래도 손은 놓지 않고,

그렇게 터벅터벅.......


우리의 눈부신 노년 속으로......




사랑해, 내 반쪽들...... K, 그리고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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