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앞동뷰이다.
생각해보면 주택이 아닌 아파트에서의 삶이 시작된 8살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우리 집 뷰는 항상 앞 동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5층짜리 단층 아파트에 살 때엔 5층 아니면 4층에 살았기에 앞 동 반, 하늘 반이 걸쳐져 보였었는데, 11층 중 7층에 살고 있는 지금은 온전히 앞동만을 바라보고 있다.
봄꽃이 흐드러질 때나, 맴맴 매미 소리가 짙은 녹음 속에서 숨바꼭질 할 때, 빨갛고 노란 가을융단이 거리마다 깔릴 때나, 흰 눈이 소복이 내릴 때, 황금빛 동이 트고, 쨍 하고 파랬다가, 다홍빛 노을이 지는 그런 마법같은 하늘을 볼 때 나는 우리 집이 아쉬워 죽겠다. 울산 친구네 집에선 바다가 보이고, 영종 친구네 집은 노을 맛집이고, 송도 친척언니네는 야경이 죽이는데, 사시사철 365일 앞동을 보고 사는 나는 아쉬워 죽을 지경이다.
며칠 전, 요 몇 년 사이 본 적 없을 만큼 눈이 내렸다. 앞이 안보일만큼 쏟아진 눈은 금세 온 거리를 하얗게 뒤덮었다. 오랜만에 보는 진풍경에 연신 베란다를 왔다갔다 하다 뜻밖의 지점에서 발이 멈췄다. 베란다 끝 빨랫대 아래. 그곳의 샷시는 양쪽에 문을 두고 있는 중앙 통유리였고, 방충망이 없어 시야가 깨끗했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길 건너 아파트 상가 뒤로 야트막한 산이 보이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단지와 단지 사이로 난 오래된 나무 빼곡한 길과 그 너머 작은 공원이 보였다. 하얀 눈발은 그칠 줄 몰랐고, 하얗게 변해버린 오른쪽과 왼쪽의 뷰는 여느 집 부럽잖게 예뻤다. '뜻 밖의 뷰 포인트' 발견이었다.
내친김에 창고에 쳐박혀 있던 캠핑의자를 꺼냈다. 시야가 트인 왼쪽을 향해 의자를 펼쳐놓고, 몇 년 전 떠 둔 블랭킷도 의자에 걸쳤다. 물을 끓이고, 커피믹스 한 잔과 책 한 권을 들고 의자에 앉아 겨울 풍경을 원없이 즐겼다.
세상에나...... 내가 왜 여태 이 생각을 못했던가......
이 집으로 이사오고 6년이 되는 동안, 나는 왜 이 베란다 이 위치에 작은 의자 하나 갖다 놓을 생각을 못했던가. 똑바로 앞만 보니 답답한 앞 동만 보였던게지,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탁 트인 길도 보이고, 저 멀리 산도 보이는 것을......
요즘 내 하루의 시작은, 이른 아침 만보 걷기 후 베란다 캠핑의자에서 차 한 잔 마시기이다. 땀을 쭉 뺀 후 우리 집 뷰포인트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은 그야말로 일품 중의 일품이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화창하면 화창한대로, 추우면 블랭킷을 두르고, 눈 부시면 썬글라스도 쓰고, 그렇게 오롯이 아침 하늘, 아침 나무, 아침 티타임을 갖고 나면 하루가 즐겁고 설렌다.
어느 곳을 보느냐에 따라 나의 하루가 달라진다. 나의 마음이 달라지고, 나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살면서 언제나 푸르고 반짝이는 아름다운 뷰만 볼 수는 없겠지. 때로는 지하의 어둠이 유일한 뷰가 될 수도 있고, 건물로 꽉 막힌 답답한 뷰가 전부일 때도 있겠지.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예상치 못한 햇살이 어둠 속에 조명처럼 비춰지는 걸 발견하거나, 기대치 못한 건물과 건물 사이의 쭉 뻗은 길을 찾게 될 수도 있겠지. 조금만, 아주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오늘 하루가 더없이 특별하고,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한달, 두달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그럭저럭 살아지는 것 같은 한 해, 한 해가 후회도 미련도 없이 뿌듯하겠지. 그렇게 내 삶이 미소로 가득해 지겠지.
그저 고개만 살짝 돌려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