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로 칼비노/이현경 역(민음사)
몇 년 전, <반쪼가리 자작>을 통해 이탈로 칼비노를 처음 만났다.
전쟁터에 나갔다가 터지는 폭탄을 피하지 못해 반쪽으로 갈라진 자작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중세스러웠고 조금은 동화스럽기도 했다. 민음사 고전시리즈에 묶여있으니 당연히 저자는 적어도 1700년대, 혹은 1800년대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웬걸~ 너무나도 고풍스런 배경의 소설을 쓰는 이 작가는 20세기의 사람이었다. 심지어 내가 막 10대에 접어들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완전 옛날 사람일거라 생각했는데 나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이라니......
<반쪼가리 자작>을 재밌게 읽었던 터라 동네 동생이 책 좀 추천해 달라 했을 때 주저없이 이탈로 칼비노를 추천했다. 아직 우리 나라에선 그닥 유명하지 않은, 조금은 생소한 이 작가의 책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재밌을지 궁금했다.
<나무 위의 남작>.
<반쪼가리 자작>보다 훨씬 두껍고, 초반의 진행은 조금 지루했다. 하지만, 역시 칼비노는 칼비노다. 뒤로 갈 수록 이야기에 재미가 붙어 다음 장을 궁금하게 만들었고, 곳곳에 생각하게끔 만드는 인물들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마음 따뜻하지만 표현은 딱딱한 어머니, 그리고 괴팍한 누이까지.... 코지모는 이 모든 억압적이고 (자신이 느끼기에) 불합리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나무 위로 올라갔다. 처음엔 어린 아이의 치기어린 반항 정도일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코지모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확고했다. 며칠 지내다 제 풀에 꺾여 내려오겠지 했던 생각은 오산이었다. 코지모는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조차 땅 위로 내려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람이 나무 위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먹고, 입고, 배설하고, 사랑하고 하는 일들은 물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일들을 나무 위에서 어떻게 해나간단 말인가?
코지모는 이 모든 것이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잘 먹고, 잘 입고, 문제없이 배설하고, 뜨겁게 사랑했다. 그리고, 옴브로사의 사람들 뿐 아니라 타 지역,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땅 위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잘 교류하고 소통했다. 나무 위에 있었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한 발 떨어져 생각할 수 있었으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단순히 그냥 나무 위에 올라 간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를 통해 바라본 사람과 세상, 전쟁과 정치, 사랑과 삶이라는 온갖 일상적인 주제들이 꼬리를 물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각자의 나무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자기 나무 아래에 집을 짓고 살 것이고, 누군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자신의 나무를 옮겨 심고 정착할 것이다. 누군가는 평생 나무 위에 오르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코지모처럼 자기 나무 위에 스스로 올라가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자기 나무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나무 위의 삶을 선택할지, 땅 위의 삶을 선택할지도 자신의 몫이다. 그 어느 삶의 방향에도 정답은 없다. 다만,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의 방식에 최선을 다 하고 후회하지 않는 것, 내 삶의 중심은 '나'로 두되 '내 안'에 갇히지 않는 것, 그런 태도야 말로 한 번 주어진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수 있는 힌트가 되지 않을까?
나의 삶의 방향을 선택할 때이다.
나의 삶의 결을 정리하고,
나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며,
나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때이다.
올리바바사의 백작이 코지모에게 던진 질문을 내게도 던져본다.
"나무 위에 남아서 무얼 하겠다는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