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텃밭을 둘러싼 옥수숫대에서 옥수수를 툭툭 따 주루룩 벌여놓고 잘 영근 실한 것들은 자식들 몫으로 싸두고, 지질하고 못난 것들은 알갱이를 모두 떼어내 말리고 덕구어 옥수수차를 끓여먹을 수 있도록 만드셨다. 엄마가 싸 주신 옥수수는 잘 쪄서 냉동실 서랍에 쟁여두고, 진갈색 옥수수알갱이 역시 냉동실 한 켠에 잘 묻어둔다. 옥수수 좋아하는 신랑의 밤참으로, 아침으로 쟁여둔 옥수수는 야금야금 금방 없어진다. 옥수수 알갱이는 조금 더, 조금 더 묻어둔다. 잠자리가 날고, 코스모스가 지고, 하늘이 유독 높고 파래지는 날. 아침, 저녁 두 팔을 감싸 비빌정도로 쌀쌀해 지고, 창문을 열다 훅 밀려드는 바람에 코끝이 시려지는 날. 달력이 달랑 한 장이 남고, 보슬보슬 니트가디건을 언제든 걸칠 수 있게 의자에 툭 걸쳐놓는 날.
묻어 둔 옥수수알갱이를 꺼내 주전자에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공기는 따스하게 데워지고 집안 가득 구수한 옥수수차 냄새가 퍼진다. 갈색 알갱이 한 줌에서 우러난 갈색 옥수수차. 뜨거운 거 못먹는 나 이지만, 쌀쌀한 계절의 아침에 끓여낸 옥수수차는 보온 주전자에 담기 전 꼭 한 잔을 따라 호호 불어 마신다. 호호 불 때 마다 하얀 김 사이로 엄마가 보이는 듯 하다. 호로록 마실 때 마다 구수한 향 사이로 엄마의 냄새가 나는 듯 하다. 몸 속 가득 따스한 기운이 감돌 때 마다 엄마가 꼬옥 안아주는 듯 하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