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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Nov 16. 2022

옥수수 단상

엄마는 텃밭을 둘러싼 옥수숫대에서 옥수수를 툭툭 따 주루룩 벌여놓고 영근 실한 것들은 자식들 몫으로 싸두고, 지질하고 못난 것들은 알갱이를 모두 떼어내 말리고 덕구어 옥수수차를 끓여먹을 있도록 만드셨다. 엄마가 주신 옥수수는 쪄서 냉동실 서랍에 쟁여두고, 진갈색 옥수수알갱이 역시 냉동실 켠에 묻어둔다. 옥수수 좋아하는 신랑의 밤참으로, 아침으로 쟁여둔 옥수수는 야금야금 금방 없어진다. 옥수수 알갱이는 조금 더, 조금 묻어둔다. 잠자리가 날고, 코스모스가 지고, 하늘이 유독 높고 파래지는 날아침, 저녁 팔을 감싸 비빌정도로 쌀쌀해 지고, 창문을 열다 밀려드는 바람에 코끝이 시려지는 날. 달력이 달랑 장이 남고, 보슬보슬 니트가디건을 언제든 걸칠 있게 의자에 걸쳐놓는 날. 

묻어 둔 옥수수알갱이를 꺼내 주전자에 넣고 보글보글 끓인다.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어느새 공기는 따스하게 데워지고 집안 가득 구수한 옥수수차 냄새가 퍼진다. 갈색 알갱이 한 줌에서 우러난 갈색 옥수수차. 뜨거운 거 못먹는 나 이지만, 쌀쌀한 계절의 아침에 끓여낸 옥수수차는 보온 주전자에 담기 전 꼭 한 잔을 따라 호호 불어 마신다. 호호 불 때 마다 하얀 김 사이로 엄마가 보이는 듯 하다. 호로록 마실 때 마다 구수한 향 사이로 엄마의 냄새가 나는 듯 하다. 몸 속 가득 따스한 기운이 감돌 때 마다 엄마가 꼬옥 안아주는 듯 하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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