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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연 Oct 22. 2023

할머니, 치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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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총총하시던 시할머니께서 조금 전 한 일을 깜빡하시기 시작한 것은 우리 집에 오시고 4년이 지난 2019년 무렵이었다. 연예부 기자마냥 연예인 소식에 빠삭한 할머니가 TV에 나오는 연예인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입에서 맴맴 돌 뿐 도무지 입 밖으로 그 이름이 나오지 않아 답답해 하셨다. 뭐 그정도야 젊은 우리도 겪는 일이니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넘어갔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어제 말씀하신 얘길 까맣게 잊으셨다. 분명 어제 나와 마주앉아 이렇고 저렇고 한 얘기들을 나눴는데, 다음 날 그 이야기를 꺼내면 그런 얘길 한 적이 없다고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 병원에선 노화에 의한 기억력 감퇴라 했다. 연세에 비해 뇌사진도 깨끗하여 나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실 수 있다는 걸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다 급성뇌경색이 오고, 할머니는 초기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구안와사처럼 입 절반이 마비되어 일그러지고, 걸음도 잘 못걸으셨다. 발음이 어눌해 지고, 어지러워 하셨다. 그렇게 치료를 위해 병원에 두 달,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에 1년 반 입원해 계시다 2021년 6월 다시 집으로 오셨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보다 요양 병원에 더 오래 계시게 되었지만, 결론적으론 그로 인해 재활운동을 더 꾸준히 하실 수 있었고, 퇴원 무렵엔 걷는 것, 말 하는 것, 드시는 것에 거의 문제가 없이 건강하게 나오실 수 있었다.

병원에 계셨던 2년여의 시간동안 할머니의 치매는 조금 더 진행이 되어 있었다. 매일 약 때를 기가막히게 맞춰 한 줌 씩 되는 약을 꼭꼭 맞게 챙겨드시는 분인데, 한 줌을 드시고 TV 채널 돌리시다 “아고, 약을 안 먹었네!” 하시곤 또 한 줌을 드셨다. 두 달에 한 번, 두달치 약을 지으러 가기 전 남은 약을 확인해 보면 점심약은 열흘치가, 저녁약은 이레치가, 아침약은 이틀치가 남아있곤 했다.

일주일에 5번 정도는 옷장 정리를 하셨다. 서랍을 열어 이 옷, 저 옷을 꺼내보고, 찾아보고, 작은어머니께 전화해 아무래도 내가 할머니 병원에 계시는 동안 옷을 갖다 버린 것 같다 하셨다.

4~50년 전 이야기를 어제 이야기처럼 하시고, 방금 전 하신 일은 잊어버리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화장실을 혼자 가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워낙 깔끔하고 태 나는 걸 좋아하는 분이시라 성인용 요실금 팬티 입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데, 새벽에 소변 실수를 몇 번 하시고는 주무실 때만 요실금 팬티를 착용하시기도 했다.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나는 아직 정정하신 할머니가 고맙고 감사했다.


작은 어머니께서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자고 하셨다. 처음 뇌경색 판정을 받았을 때 이런저런 재활용구를 싸게 대여할 수 있다고 하여 노인요양등급을 신청했었다. 할머니는 4급 판정을 받으셨다. 퇴원을 하고 다시 집에 오셔서는 예상대로 침대에서 움직이질 않으셨다. 꾸준히 운동을 해야 하는데, 어떤 날은 어지러워서 안되고, 어떤 날은 머리가 아파 안되고...... 활동적이지 않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울 방법이 없었다. 마침 집 근처에 괜찮은 주간보호센터가 있어 작은어머니와 답사를 해 보고 그곳에 할머니를 등록시켰다. 처음엔 다니기 싫다고 짜증을 내셨는데, 막상 다니기 시작하고서는 매일 아침 15분 먼저 나갈 준비를 싹 하고 거실로 나와 앉아계셨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할머니가 센터에 가 계신 시간은 내게도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 되었다. 작은어머니께서는 며느리인 본인이 아닌 손주며느리인 내가 할머니를 모시는 것에 늘 미안해하셨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려 한다. 주간보호센터도 물론 할머니를 위해서가 먼저지만, 조금이라도 내게 자유시간을 주고싶은 마음이셨으리라. 그 마음을 알기에 이래저래 신경 써 주시는 작은 어머니가 참 고맙다.


퇴원 후 다시 할머니와 지낸 지 2년이 훌쩍 넘었다. 그간  할머니는 치매가 조금 더 심해지셨다. 나는 가슴이 마구 뛰기도 하고, 의외로 담담하기도 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아직은 뭐 괜찮다 싶기도 했다. 점점 낯설게 변해가는 할머니를 보며 화가 났다 미안했다를 반복하기도 했다. 작은어머니께서는 더이상 힘들겠다 싶어지면 다시 요양병원으로 모실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셨다. 그래, 그러면 되지.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한껏 쪼그라든 할머니의 등이 너무 가여웠다. 평생 "이입분"으로 살아보지 못한 할머니가 너무 안쓰러웠다. 엄마 품 대신 할머니 품에 파고들었을 우리 신랑도 짠했다. 입분씨와의 동거가 항상 쉽지도, 늘 편치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동거를 청산하고 싶지도 않으니 나라는 사람도 참 모르겠는 사람이로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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