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연 Oct 22. 2023

센터에 다니시다

6

“노인정 그딴데 나는 싫다!”

처음 할머니와 살림을 합쳤을 때, 하루종일 방에서 TV만 보시는 게 심심하실까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경로당에 가보시는 건 어떨까 넌지시 여쭌 적이 있다. 할머니는 손사레를 휘휘 치시며 극구 싫다 하셨다.

“할마씨들 자식자랑 하면서 잘난척들 하는 것도 꼴보기 싫고, 모여서 고스돕들 치면서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시려. 할아버지들이 자꾸 말 걸고 수작 부리는 것도 아주 시려!”

경로당 분위기 좀 보려 미리 답사를 다녀온 후 드린 말씀이었다. 관리사무소 1층에 자리한 경로당은 어린이집과 마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관리사무소 옆 건물이 유치원이었기에 어르신들은 오가며 꼬물꼬물 손주같은 아이들을 매일 마주칠 수 있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까이 두고있으니 그 주변은 당연히 금연구역이었고, 그래서인지 경로당은 더욱 쾌적하게 느껴졌다. 길다란 소파가 이쪽 저쪽에 놓여 있어 많은 어르신들이 앉으실 수 있었고, 할아버지라봐야 달랑 한 분이신데, 그마저도 쑥스러우신지 잘 안나오신다고 경로당에서 식사를 담당하시는 여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여기 어르신들은 화투도 잘 안치시고 점잖으신 편이예요. 오셔서 수다도 떠시고, 점심도 드시고, 가끔 요 앞 공원으로 산책도 다니시고 하면 좋지. 여기 봉사자들이 와서 이런저런 놀이같은 것도 할 때가 있는데 어르신들이 아주 좋아하세요. 집에 할머니도 한번 나와보시라고 해요.”

구석구석 깔끔하고 단정한 것이 할머니도 싫지 않으시겠다 싶었다.

“할머니, 제가 가보니 거기에 할아버지는 한 분 밖에 안계시는데 그마저도 잘 안나오신대요. 그리고 얼마나 깔끔한지 몰라요. 내일 저랑 한번 가보실래요?“

할머니와 함께 산 이후로 한시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던 나는 갑갑했다. 소파에 조금이라도 늘어져 있으면 어김없이 할머니의 눈총과 핀잔이 들려왔다. 부엌 구석에 숨어있는 것도 서러웠다. 내게는 나만의 시간, 나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내일 가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안다니셔도 되요. 한번 가보실래요?”

내가 재차 묻자 할머니는 기분이 상하셨는지,

“싫다는데 왜 자꾸 나가라고 하냐!”

하고 소리를 치셨다.

나는 그만 입을 다물고 할머니 방을 나와 부엌 구석, 나의 대피소에 가 앉았다.

할머니께 뇌경색과 치매가 오기 전까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날이 좋으면 할머니와 함께 공원에 나갔고, 운동 삼아 함께 걸었다. 한동안은 공원 정자에 모인 할머니들 무리에 합류하실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정자 근처 벤치에서 책을 읽거나 공원을 뱅뱅 돌며 운동을 했다. 할머니가 기분 좋게 어울리시는 것 같을 때는 집에 가 청소기를 돌리거나 잠깐이라도 편하게 늘어져 있기도 했다. 할머니가 집에 가겠다고 전화를 하시면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오는 길에 내내 할머니는 오늘 만난 할머니들을 씹었다. 내 옆에옆에 앉은 할마씨는 어찌나 말이 많은지 듣기 싫어 죽을 뻔 했다, 그 옆에 모자 쓴 할매는 아들 자랑을 어찌나 하던지 꼴보기 싫어 죽을 뻔 했다, 내 앞에 앉은 할매는 식탐이 어찌나 많은지 같이 먹으라고 펼쳐 둔 과자를 저 혼자 다 쳐먹더라, 그 옆에 할매는 뭐가 못마땅한지 뚱~ 하게 앉아있어 별로더라.

“할머니, 그러면 내일부터는 산책만 하다 들어올까요?”

하고 물으면

“그래도 또 어떻게 그래. 안나가면 안나간다고 뭐라고들 떠들텐데……”

하셨다.

“오늘 저 앞동 사는 이 딸래미가 같이들 먹으라고 사과를 사줬다면서 가지고 나왔는데 어찌나 자랑을 해대던지…… 저만 딸 있지, 저만. 근데 사과가 달긴 하더라.”

어느 어르신이 간식이라도 챙겨 나오시는 날이면 할머니는 간식 좀 챙겨달란 말을 빙빙 돌려 하셨다.

“그럼 내일은 간식 좀 챙겨서 내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맛있는 거, 너무 싸구려 말고 왜 이쁘고 맛있는 걸로 내가야지 안그러면 뒤에서들 욕해.”

하셨다.

그래도 집에만 계시는 것 보다는 잠깐씩 공원에 가주시는 게 고맙고 감사했다.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신 후, 할머니는 다시 방 안에만 계셨다. 자꾸 걷고, 움직이고 하셔야 몸이 안 굳고 덜 아프실텐데 할머니는 다리가 아프고, 머리가 어지러워 못걷겠다시며 방 밖으로 나오질 않으셨다. 이대로는 안된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점점 걷기 힘들어지실테고, 나는 나대로 또 갑갑해질 것이다. 작은어머니와 알아두었던 주간보호센터에 할머니가 다니실 수 있도록 설득해야 했다. 하지만, 경로당 때와 마찬가지로 할머니는 강하게 거부하셨다.

“내가 그런 데 어떻게 가? 에이, 시려!”

“할머니, 계속 이렇게 누워만 계시면 점점 못걷게 되실거예요. 병원에서 재활운동 열심히 하셔서 지금 이렇게 좋아지셨잖아요. 한번 가보시고 싫으시면 그냥 오셔도 돼요.“

나와 작은어머니의 설득에 할머니는 마지못해 센터를 나가셨다.

센터에 다녀 온 첫 날, 할머니의 표정을 살피니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어떠셨어요? 괜찮으셨어요?”

나의 물음에 할머니는 미소를 띄시며,

“나쁘지 않드라. 선생들도 착하고.”

하셨다.

“밥은 어떠셨어요? 맛있었어요?”

“밥이 딱딱하지 않고 아주 똑참하게 잘 됐더라. 반찬도 깔끔하고. 거기 밥 하는 이가 잘 하는 사람이래.”

“그래요? 다행이네~ 오늘은 뭐 하셨어요? 운동 하셨어?”

“그냥 거기 걷고, 이렇게 이렇게 자전거도 타고, 운동 많이 했어. 젊은 선생들이 와서 공 가지고 노는 것도 했는데 나한테 자꾸 공을 줘가지고~.......“

할머니는 프로그램이 재밌으셨는지 연신 웃으셨다.

“그림을 그리라고 색연필이랑 그림을 주는데 다른 할매들은 막 아무렇게나 칠하고 그러는데 나는 하나 삐져나가지도 않고 잘 칠하니까 선생들이 다 구경을 와서는 어쩜 이렇게 잘 그리냐고. 선생들이 다 와서 내 것만 보고 갔어.”

마치 학교에 처음 간 아이가 엄마에게 자랑을 하듯 할머니는 그 날 저녁 내내 센터에서의 일을 이야기하셨다.

“그러면 할머니, 센터에 계속 나가실래요?”

“뭐, 그래야지 뭐. 선생들이 집에 올 때 다들 그렇게 내 손을 잡고, 이쁜 할머니 내일도 꼭 오시라고 어찌나들 좋아하는지…… 천상 내일도 또 가야지 뭐.”

나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었다.


“어머니, 할머니 센터 계속 다니시겠대요. 오늘 재밌으셨나봐요.”

작은어머니께 톡을 보내니 작은어머니께서도 “다행이다~”하고 답은 보내셨다.

그 후로 할머니는 센터에 다니셨다. 센터의 노인네들은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은데 젊은 선생들은 좋다셨다.

“저희 할머니는 예쁘다고 해주시면 엄청 좋아하세요.”

센터 등록을 하고 복지사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리니 눈치 빠른 복지사 선생님은 센터 도우미 선생님들께 이 말씀을 전달해 주셨고, 센터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할머니께

“아유~ 우리 이입분 어르신은 어쩜 이렇게 곱고 예쁘세요~”

하고 돌아가며 칭찬을 해주셨다. 덕분에 할머니는 매일 아침 15분 일찍 나와 등원차를 기다리셨다.

주간보호센터는 할머니와 나 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활동적이지 않은 할머니께는 생활운동을, 내게는 낮시간의 자유를. 간혹 선생님들이 자신에게 소홀하다 싶으실 때면 오늘 센터 안가신다며 시위를 하시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잘 다니셨다.


“가족”의 시간은 항상 “우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존재한다 생각했는데, “각자”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음을 나는 할머니와 함께 살며 깨달았다. “각자”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을 더욱 편안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충전타임이었음을 나는 이제 잘 안다.


이전 05화 “고맙다” 그 한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