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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주간보호센터에 가지 않겠다 하실 땐 뭔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는 뜻이다.
한참 센터를 잘 다니시던 어느 날이었다. 전 날 저녁도 두어술 뜨는 둥 마는 둥 하시고, 그 날 아침은 아예 드시질 않으셨다. 당체크를 하려 옆에 앉으니 그깟 거 하면 뭐하냐고 버럭 화를 내셨다. 밤새 화장실을 5번이나 왔다갔다 했는데 오줌이라고 찔끔 나오다 말았다며 소리를 치셨다. 인슐린 주사를 놔드리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삶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마저도 손사레를 치셨다.
두 달에 한 번, 할머니의 약을 타온다. 당뇨약, 혈압약, 치매약, 혈관약, 위장약, 변비약, 소변약, 각종 진통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거기에 다른 병원에서 타 온 타이레놀, 감기약, 그리고 따로 사서 먹는 진통제, 루테인, 소화제 등등등. 할머니의 서랍엔 약이 그득그득하다. 그 중 수면을 위한 신경안정제가 3개 있는데, 두 개는 일반 안정제이고, 1개는 수면유도제인 졸피뎀이다. 졸피뎀은 의존도나 내성력이 강해 처방 받을 수 있는 갯수가 정해져 있어 두 달치를 지어도 28알이 나온다. 이 약은 매일 먹는 것이 아니라 정 잠이 안온다 싶을 때 반 알, 혹은 한 알 씩 먹는 것이라 그동안은 오히려 약이 남았었는데, 작년 부터는 그 약을 드시지 않으면 잠이 안오신다며 매일 드시는 바람에(어떤 때는 1개 반씩도 드셨다) 늘 약이 20일치씩 모자랐다. 치매 이후 약을 잘 챙기지 못하신다는 걸 알고 하루치씩 약을 분배해 내가 챙겨드리기 시작하면서, 이 졸피뎀을 어떻게 분배해야 두 달에 잘 맞춰 드실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엔 3일에 한 번씩 드렸다. 하지만, 그 날 먹는 약의 갯수가 평소보다 적은 걸 못견디시는 할머니께서 잠 못 자 죽으면 그만이라고 길길이 화를 내시는 통에 그 이후엔 졸피뎀을 반으로 잘라 매일 드렸다.
처음엔 반 알로도 잠을 좀 주무시던 할머니였는데 이젠 내성이 생겼는지 바로 잠들지 못하셨다. 결국 여분의 졸피뎀은 물론 다음 처방 전까지 날짜를 맞춰 놓은 졸피뎀마저 야금야금 다 꺼내 드시는 통에 딱 그 전 날 밤부터 졸피뎀을 드시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잠 자는 약 다오!"
"할머니, 그 약 다 드셔서 오늘, 내일 그냥 이 약들만 드시고 주무셔야 해요."
"그럼 어떡하냐? 그 약들은 하나 소용 없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할머니가 약 다 드셨잖아."
"늬미~ 먹어도 소용없는 놈의 약, 그냥 콱 죽어버림 그만이지."
전 날 저녁, 할머니는 화가 난 채 잠자리에 드셨다. 그리고 다음 날 ,센타 등원을 거부하셨다. 식사도 거부하셨다. 당뇨용 두유도, 토마토 쥬스도, 옥수수도 모두 거부하셨다.
"왜이렇게 아침부터 화가 나셨어요?"
내가 물으니 할머니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화 안나게 생겼어?" 하고 소리치셨다.
출근하는 신랑에게,
"오늘 할머니 아침부터 기분이 안좋으시네. 출근 전에 할머니한테 가서 괜찮으시냐고 물어봐. 예~쁘게. 친절하게."
라고 했다. 신랑은 할머니방에 들어가 "어디 아퍼?" "괜찮아?" 하고 물었고, 할머니는 힘없는 말투로 "머리가 어지러워서 죽겠어, 그냥." "잠을 못 자 더 그렇지, 뭐." 하셨다.
"할머니가 자기한테는 화를 안내시네~"
하고 내가 서운함을 감추고 장난치듯 말하니 신랑도 장난치듯 "그러엄~" 하고 대답했다. 그러곤 미안한 듯 "수고해." 하고 말했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걸까? 갑자기 저혈당이 올 수도 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드신다고 버티시면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러면 병원에 가셔야 한다고 해도 "아무데도 안 갈거아!"하고 입을 꾹 다무시니 도통 이럴 땐 어찌해야 할지…… 드시질 않으시니 기운이 없으시고, 화장실 갈 때도 다리가 떨어지질 않으셔서 부축하고 겨우겨우 가셨는데, 그런데도 아무것도 드시질 않으신다니 어찌 해야 좋을지......
결국 그 날 할머니는 센터를 나가지 않고 누워계셨다. 그 다음 날 두달치 약을 넉넉히 타 와 할머니 앞에 와르르 펼쳐놓고 원하시던 약을 확인시켜 드린 후에야 할머니의 시위는 끝이 났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 날도 역시나 할머니는 센터 등원을 거부하셨다. TV도 켜지 않고 돌아 누워 센터 그까짓 거 뭐하러 가냐고 소리를 치셨다.
“왜요? 센터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하고 물으니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선생들이라고 하나같이 잘못됐어! 내가 머리가 아파서 요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요렇~게 앉아있었는데 누구 하나 괜찮냐고 와서 묻는 사람이 없어!“
하시는 거였다.
“머리가 아프셨어? 그러면 선생님들을 부르시지 왜 가만히 앉아계셨어요? 선생님들이 할머니 머리 아픈 거 몰랐나보네.“
“모르긴 뭘 몰라? 내 옆에 할망구는 밥 먹으러 갈 때도 그냥 요래요래 부축을 하고, 아양을 떨고 하면서 나는 거들떠도 안보고…… 아무래도 선생들이 내가 간식같은 거 안 돌리고 그냥 다니니까 아주 별 거 아닌 줄 알고 무시하는 거 같아.”
아, 이거였구나.
<시위의 이유>
1. 선생님들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2. 나의 짝꿍 할망구가 간식을 돌렸다.
3. 나는 간식을 돌리지 않아 선생님들이 나를 무시한다.
4. 그러니 손주며느리여! 면이 서는 고급 간식을 돌려라!
센터의 복지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이러이러하여 할머니께서 오늘 센터를 쉬시겠다고 한다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선
“어머! 어르신께서 머리가 아프셨다고 하세요? 어제 별 다른 점 없으셨는데~ 식사 하러 가실 때 짝꿍 어르신 먼저 모시고 가서 서운하셨나보네요. 아이고, 어째요. 저희가 더 신경쓸게요, 보호자님.“
하셨다. 복지사 선생님과 센터의 선생님들은 할머니가 다른 어르신들을 먼저 챙기면 유독 서운해하고 질투하신다는 걸 알고계셨다. 앞으로도 어디가 불편하시면 언제든 선생님들께 말씀해달라고 복지사 선생님은 거듭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날 오후, 복지사 선생님은 할머니께 전화를 하셨다. 할머니가 센터에 오시지 않아 선생님들이 모두 걱정하고 보고싶어 하셨다고, 다른 어르신들도 이쁜 할머니 왜 안오시냐고 계속 물으셨다고 말씀해 주셨다. 할머니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셨다.
다음 날 할머니는 마지 못한 척 센터에 나가셨다. 그리고 그 주에 나는 할머니의 센터로 간식을 푸짐하게 보냈다.
할머니는 알고 계신다. 할머니의 시위가 자식들을 움직이는 큰 무기라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매번 설득하지 못하고 요구를 들어드리니 할머니는 점점 금쪽이를 넘어 우리 집 황금쪽이가 되셨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