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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이렇게 떨릴 수가 없어. 아무래도 이상해."
"머리가 이렇게 어지러울 수가 없어. 아무래도 이상해."
"속이 이렇게 쓰릴 수가 없어. 아무래도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해"는 올 해 할머니가 가장 많이 사용한 마무리 문구이다.
"이렇게 아픈 건 생전 처음이야."
이 역시 할머니의 단골 멘트이다.
"아무래도 이상해. 몸이 분명 크게 잘못됐나봐. 에효~ 진짜 죽든가 해야지 원......"
2023년 1월, 할머니는 병원을 4번 방문하셨다. 혈액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를 하셨고, 내시경 대신 할 수 있는 초음파검사 같은 걸 하셨다.(할머니는 고령이시라 내시경을 받으실 수 없다.) 어지럼증검사도 40분에 걸쳐 받으셨고, 영양제도 2번 맞으셨다. 검사 결과는 늘 그렇듯 연세에 비해 굉장히 양호하셨다. 당뇨와 혈압을 갖고 계시지만, 특별한 합병증도 없으시고, 치매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뇌사진 역시 깨끗한 편이었다. 할머니를 담당해 주시는 각 진료과의 선생님들은 가지고 있는 지병과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참 건강하신 편이라고 매번 말씀하셨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는 그 말들을 믿지 않으셨다.
"아무래도 이상해. 아무래도 이전 같지가 않아."
"왜요? 어디가 이상하신데?"
"그냥 막 어지럽고 정신을 못차리겠는게 아무래도 예사는 아닌 거 같아."
"너무 힘드시면 병원에 며칠 입원하실까?"
할머니는 가끔 병원에 입원하고 싶으실 때면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곧 돌아가실 것 처럼 연기 아닌 연기를 펼치시곤 하셨다. 처음엔 너무 놀라 응급실로 뛰어다녔는데(응급실에 가면 매번 초음파에 어떨 땐 MRI 검사를 하는데, 희한하게 검사를 하면 아무 것도 안나오고, 온 김에 영양수액을 맞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시곤 했다.), 몇 번 속은 후로는 전처럼 마음이 다급해 지진 않았다. 때때로 혈당 조절 때문에 입원을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한번 입원을 했다 퇴원을 하시면 한동안은 기분이며 컨디션이 좋으셨다. 원하는 게 이루어 질 때 까지 달달달달 볶는 스타일인 할머니이기에 볶이다 볶이다 결국엔 원하시는 걸 해드리게 되었다. 이 날에도 자꾸 아프시다는 게 아무래도 병원에 입원하시길 원하셔서 그러는 게 아니겠냐는 신랑의 말에 나는 할머니께 슬쩍 입원 의향을 물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냐. 이건 병원간다고 나을 게 아닌 병인 거 같어."
할머니는 눈을 게슴츠레 뜨시고는 천장을 바라보셨다.
"전에 내가 아주 죽을 뻔 한 적이 있어. 너무너무 아파서 이 병원 저 병원을 다 가봐도 소용이 없었는데, 동네 장님 만신이 와서 살려줬어."
"장님 만신이요?"
"응, 그 만신이 밥을 해서 이렇게 이렇게 해가지고 대문 밖에 버렸거든. 그랬더니 싹 나았어."
할머니 기억 속 장님만신은 작은아버지가 대여섯살 되었을 무렵 살았던 동네의 무당이라고 나중에 작은 어머니께 들었다. 환갑이 넘은 작은아버지가 대여섯살 때라면, 적어도 50년이 훌쩍 넘은 때의 일인데, 할머니는 마치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 것 처럼 말씀하셨다.
"그 때처럼 밥을 좀 해서 집 밖으로 던지면 좀 나을 것 같은데......"
순간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우리가 사는 곳은 아파트이고, 밥을 해서 집 밖으로 던지면 음식물 쓰레기를 투척하는 게 될텐데, 그러면 안되지 않나? 할머니 몰래 밥을 던진다고 하고 나가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려야 하나? 극구 본인이 밥 던지는 걸 보시고자 할텐데......
"만신이 그런 걸 잘 해. 어디 잘 하는 만신 있으면 한번 했음 좋겠는데......"
"할머니, 무당을 만나서 굿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계속해서 만신을 얘기하시는 할머니께 물었더니 할머니는 아무 말씀을 않으셨다.
아! 이거구나! 할머니가 지금 꽂히신 것이 이거였구나! 본인은 아픈데 병원에선 괜찮다하니 아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신겔게다. 본인은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할머니의 그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작은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말씀 드렸다. 작은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와 상의를 하시고, 나는 신랑과 상의를 했다. 작은아버지는 무슨 굿이냐며 펄펄 뛰셨다. 우리 신랑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절에 다니셨다. 지금은 다리가 불편해 작은어머니와 아버지만 다니시지만, 그 전까지는 꼬박꼬박 때가 되면 절에 가시곤 하셨다. 절 다니는 사람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할머니는 유독 미신도 잘 믿고, 무당에게 점 보러 다니는 것도 좋아하셨다고 한다. 굿도 몇차례나 했었다고 신랑과 작은어머니는 말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이런저런 금기가 꽤 많았다. 장례식장 다녀오면 소금과 고춧가루를 섞어서 온 몸과 차에 착착 뿌리고 들어와라, 새 물건을 사왔을 땐 밥을 버리든 술을 버리든 꼭 예방을 해라, 매 년 입춘 때 시간에 맞춰 현관에 부적을 붙여라 등등등...... 할머니가 다니는 절의 스님도 사주를 공부해 가끔 신도들이 물으면 올 해 조심하십시오 하는 말씀은 종종 해주셨다 한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조금이라도 걱정이 생기면 작은어머니께 전화해 "스님에게 좀 물어봐다오."하셨다.
"스님을 집으로 좀 오십사 부탁을 드려볼까?"
작은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할머니께서 신뢰하고 의지하는 분이시기도 하고, 오랫동안 뵙지 못했으니 이번 기회에 만나서 할머니께 좋은 말씀 해주시면 할머니 마음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히 스님은 그러겠노라 하셨고, 나는 할머니께 바로 이 말을 전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뾰로통하게 말씀하셨다.
"에이~ 그까짓거 스님이 집에 오면 뭘해? 스님이 그런 걸 할 줄이나 알어?"
"스님이 할머니 뵌 지도 오래됐고, 만나서 이런저런 예방도 해주시고 하신대요."
"에이~ 집에서 무슨 예방을 해! 내가 가면 모를까......"
할머니는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절이 가보고 싶으셨던걸까? 스님이 집에 오는 것 보다는 본인이 절에 가서 이런저런 것들을 하고싶으시다 하셨다. 우리는 스님과 약속을 다시 잡았다. "스님, 어머니께서 옛날에 만신이 했던 것 처럼 밥을 해서 버리고 그러는 걸 원하시는데 그냥 시늉만이라도 해주시면 안될까요?" 작은어머니께서 여쭈니 스님이 웃으시며 "원래 부처님도 그런 거 하라는 말씀은 안하셨어요. 하지만, 보살님들 중에 그런 걸 원하시는 분들이 많으셔요. 원체 연세들도 있고 하니까 불안하신게죠. 그래서 나도 한 두어번 흉내 내본 적이 있어요. 뭐 그거 어려운 거 아니니까." 우리는 속으로 다행이다, 다행이다 외쳤다.
그 주 금요일, 출근을 미루고 신랑이 할머니와 나를 절까지 태워다 줬다. 구시가지 상가건물 3층에 있는지라 할머니를 여차하면 업고 올라가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할머니가 잘 걸으셔서 신랑은 우릴 내려주고 바로 출근하고 내가 할머니를 부축해 계단을 올라갔다. 어머니는 과일과 나물을 준비해 오셨고, 나는 봉투에 빳빳한 5만원권 6장을 준비해 왔다. 11시쯤 시작된 의식(?)은 나에겐 참으로 낯설었다. 절에서 뭘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나이기에, 오히려 어릴 적 열심히 교회에 다녔었던 때가 있던 나이기에, 부처님상을 향해 절을 하고, 합장을 하고, 불경을 외고, 그 중간중간 절을 반복하는 그 모든것이 너무도 낯설기만 했다. 작은 어머니께선 연신 때에 맞춰 절을 하시는데, 절이 어색한 나는 멀뚱멀뚱 서있다 스님과 어머니가 절을 하시면 절 대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참 불경을 외시던 스님께서 할머니를 경전 바닥에 눕히라 하셨다. 커다란 방석 위에 할머니가 누우셨고 스님은 할머니의 이마를 짚으시고 목탁을 두드리시고, 종을 울리시며 한동안 주문같은 불경을 외우셨다. 한참을 그렇게 하시곤 불단 위에 올렸던 밥을 가지고 나가셨다. 아마도 밥을 버리러 가셨나보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얕은 한숨을 내쉬셨다.
의식이 모두 끝나고, 할머니와 스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하지만, 대화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할머니는 "스님, 내가 왜 이렇게 아파요?" 하고 물으셨고, 스님은 "늙었으니 당연히 아프지요~"라는 말을 차마 못하시고 "보살님, 맘을 편히 가지셔요." 하셨다. 함께 절에 다녔던 할머니들 안부를 이야기 하면 할머니는 영 엉뚱한 소리를 하셨다. 할머니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분을 "나보다 한참 위에요."라고 하시기도 하고, 아들만 셋 있는 보살님 이야기에 "그 집 딸이 그렇게 엄마한테 잘한대요." 하시기도 했다. 그래도 스님은 그 말이 잘못됐다 하지 않으시고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하셨다.
그렇게 절에서 돌아온 후, 할머니께 좀 어떠시냐 물었더니 "똑같지 뭐."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 스님을 만나고 온 것이 말짱 허사였나 싶어 맘이 씁쓸했다. 준비해 간 30만원 뿐 아니라 할머니 주머니에서 야금야금 5만원짜리가 나와 불전함으로 들어가기가 3번...... 작은 어머니께서 따로 불전함에 넣으신 것 까지 하면 그 2시간에 우리가 쓴 돈은 50여만원이었다. 50만원을 들이고도 할머니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면 이야말로 헛수고 중에 헛수고가 아닌가! 이러다 진짜 굿이라도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온가족이 대책을 준비하며 주말을 보냈다.
"밥 안주냐?"
다음 날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할머니가 소리를 치셨다. 다른 때 같으면 침대에 누워 꼼짝도 못하시겠달텐데 웬일로 옷까지 싹 입고 앉아계셨다.
"할머니, 옷을 싹 입고 계시네~ 어디 가시게요?"
"센타 가야지!"
"센터 가시게요?"
"그럼, 가야지. 나보고 아픈데도 없고 우정 꾀병부린다고 그러는데. 센타 가서 조금이라도 움직거려야지."
절에 다녀온 것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주말을 지내고 월요일이 되자 할머니는 새벽부터 준비를 마치시고 밥을 달라 소리를 치셨다.
"어제 센타 선생이 전화했었어. 나 안나와서 많이 아픈가 걱정돼서 전화했다고."
아침을 드시며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아~ 센터 복지사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었구나. 어쩜, 타이밍도 기가 막히지. 절에서 스님을 만나고, 의식을 치르고, 복지사 선생님의 관심어린 전화를 받았으니 그야말로 할머니 마음 녹이기 3종세트가 아닐 수 없다. ^^
한달만의 등원이라 할머니도 나도 설레긴 매한가지였다. 한동안은 센터에 잘 가실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신이 났다. 할머니를 센터 차량에 태워드리고 올라와 만세를 불렀다. 한달만에 갖게 된 텅 빈 집에서의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했다. 봉지커피 하나를 달달하게 타서 베란다에 앉아 홀짝홀짝 마셨다. 할머니가 추우시다셔서 확확 열지 못했던 창문들도 모두 활짝 열어 집안을 환기시켰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씩만 주어져도 삶의 질은 확 바뀐다.
"할머니 지금 막 센터 가셨어요. ^^"
작은어머니께 톡을 날렸다.
"어 그래 센터 가셨다니 다행이네"
작은어머니도 절에 다녀온 것이 효과가 있음에 안도하셨다. 그렇게 할머니의 만신 타령은 일단락이 되었다.
앞으로 또 어떤 깜짝 놀랄 일들이 펼쳐질지 우리는 짐작도 할 수 없다. 그 일들로 할머니는 얼마나 불안하실 것이고, 우리는 얼마나 안타까울지 전혀 예상도 할 수 없다.
아니다. 미리 예상하고 짐작하고 걱정하지 말자. 그냥 해보는거지 뭐.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해보고 안되면 또 다른 방법이 있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