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정영목 역(해냄)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사람들.....
모두 다는 아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선인(善人)이었고, 예의가 있었으며,
배려와 염치와 존중, 미덕이 있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게 된 이후 그들은
더이상 선인(善人)이 아니었다.
예의는 사치이며,
배려와 염치, 존중과 미덕은 시력의 소멸속도 만큼 빨리 사라졌다.
선과 악이 뒤바뀌고,
정의와 부정(不正)이 반전됨은
생물학적 눈이 멀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인간 본성은 성선설(性善說)보다는 성악설(性惡說)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지켜보는 수많은 눈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수양하고, 충동을 억제하며 살아 가는지도....
하지만, 지켜보는 눈이 감기는 순간
나는 정체성을 잃고, 익명성을 얻었다.
익명성이 주는 이기심은
쓴 만큼 달고, 괴로운 만큼 필요했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한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눈 먼 세상......
사라마구를 통해 본 그 세상이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실제로도 그러할 것 같아 더) 소름이 끼쳤다.
눈 뜬 것이나, 감은 것이나
인간 본연의 모습은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쳇기처럼 가슴을 묵직하게 누른다.
어쩌면 눈 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사람들도 그럴까요, 검은 색안경을 썼떤 여자가 물었다. 사람들 역시 그럴 겁니다, 그들을 보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말했다.
-p.180-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그거야말로 진리로군, 그것보다 더 참된 말을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지금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의사가 물었다. 눈먼 사람이오, 어떤 목소리가 대답하더니 덧붙였다, 그냥 눈먼 사람, 여기에는 그런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러자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물었다, 눈을 멀게 하는 데는 눈먼 사람이 몇 명이나 필요하오.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p.184~185-
우연, 운명, 운, 숙명, 워낙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어 어떤 것이 정확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순전히 아이러니로 이루어진 것이다.
-p.257-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인내심을 가져라. 시간이 제 갈길을 다 가도록 해주어라. 운명은 많은 우회로를 거치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아직도 확실히 깨닫지 못했는가.
-p.330-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에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p.449-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 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p.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