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잡화점

글쓰기 예찬론

어제 우연히 이런 기사를 보았다.

[등단 60년, 17번째 시집 낸 신달자 시인]

시를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기사를 읽는 동안 심장이 뛰었다.


21년 7월 {낯선 사람과 매일 만나고 있습니다}의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첫 번째 글을 3월에 썼으니 4개월이 걸렸고, 총 17개의 글을 썼다.

그림이 좋아서 매일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그림으로 먹고살기’를 꿈꿨다.

좋아서 그리던 색연필 인물화를 아이디어스(idus)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생에 첫 생산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 경험들이 벅차오르게 설레었다.

글이라는 것은, 가슴속에 꽉 채우고, 흘러넘쳐 야만 써진다고 한다.

21년도, 그때가 꼭 그랬다.


그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였다.

글을 쓰는 동안 글쓰기와 나는, 단 둘이 마주했고, 친해지게 되었다.

글은 기자, 작가, 대단히 성공한 사업가가 쓰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누군가의 평범하고, 잔잔한 이야기는 글을 쓴다는 고귀한 작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가슴속에 꽉 차, 흘러넘치는 것을 쏟아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시작한 글쓰기였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 2~3시간씩을 쏟아냈고, 그냥 써 내려간 글을 수없이 읽고, 다시 읽으면서 고쳐나갔다.


한동안 글쓰기에서 멀어져 있었다.

나는 등단한 적도, 정식으로 책을 낸 적도 없다. 60년 동안 꾸준히 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 민낯으로 마주 앉아 꾸밈없이 나에게 건네는 대화가 좋다.

글 쓰는 동안 뿌연 연기처럼, 어지럽게 뭉쳐있는 실타래 같은 기억들이 한 올 한 올 되살아나서 좋다.

어느 날의 기억은 투명한 비닐우산이 되고, 어느 날은 기억은 화려한 무늬의 카펫이 되고,

어느 날의 기억은 포근한 솜이불이 된다.

그저 소중한 기억이 바닥에 나뒹구는 먼저 뭉텅이로 남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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