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림에게
한동안 아주 오래 스스로에게 INPUT만을 실행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수없이 많은 유튜브 영상 시청, 자기계발, 디자인, 베이킹 등 시간이 허락되는 한 많은 온라인 강의를 2배속으로 시청했다.
비교적 단기 기억력과 순간이해력이 높은 편이라 듣고, 보는 짧은 시간에는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었다. 한껏 들뜨고, 성공을 기대하는 상상에 취했다.
하지만 막상 실행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음 순서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답답해하다 결국 포기해 버리기를 반복했다.
요즘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더욱 아깝게 느껴진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 헤어숍에 갔는데 오래 기다려야 하면 바로 돌아 나오고, 아무리 맛집이라도 대기가 길면,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가 배고픔을 해소한다. 슈퍼마켓에서 장바구니에 물건을 잔뜩 담았더라도 계산대 줄이 너무 길면 계산을 포기하는 편이다. 늘 나만의 시간이 부족한 삶을 살았던 탓일까 그 시간이면 이걸 할 수 있는데, 저걸 더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에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게다가 요즘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조급함은 더 심해졌다.
좋아하는 것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어렵다.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 그림을 그릴까? 싶다가도, 이 시간에 글을 하나 더 쓰는 게 좋을까?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그림책 만들기를 시도해 볼까? 스토리를 어떻게 써야 하지? 아니야, 이 분야는 처음해 보는 것이니 그림책 속 그림 그리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고 나서 그림을 그려보는 게 더 효율적이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들 사이에서도 이것을 하는 동안 저것을 못하니 아쉽다고 생각하는 이상하고도, 이상한 상황에 나조차 당황스럽다.
왜 이런 걸까 너무나 궁금하고, 이유를 알고 싶다.
누가 재촉하는 것도 아니고, 마감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조급해지는 것인지 오래 고민해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품에 안고, 어디론가 힘껏 달리고 있는데, 나만 맨 몸으로 바닥에 털푸덕 앉아 주위만 두리번거리는 기분이다.
한없이 외롭고, 고독하고, 두렵고, 초조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 보며, 이것도 아니고, 이것 역시 아니네를 반복하다 보면 그 감정들이 더욱 강화되었다.
맞벌이와 육아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나를 위한 시간은 점심시간뿐이었다.
아무 고민 없이 8B연필과 드로잉북을 챙겨 카페에 갔고, 1분 1초까지 짜내어 연필그림을 그렸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5분 전 알람이 휴대폰에서 울리면 그저 야속했다.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도 아쉬움과 먹먹함이 가시지 않아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림에게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저 그리는 기쁨만 있었던 풋풋한 시간들이었다.
이제야 어렴풋이 요즘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든 걸까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