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고서
이 책은 1급 장애인인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 질병, 빈곤,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 개별적인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함을 이야기하는 인문 에세이다. 저자는 누구나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타인과 존엄을 주고받는 순환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휠체어를 타기 전까지 기어 다녔고, 15세까지 병원과 집만 오갔다는 작가 김원영은 흔히 떠올리는 열악한 장애인의 환경에서 자랐지만, 서울대 졸업생이자 변호사, 작가, 연극배우, 무용수, 공연 창작자로서 누구보다 다채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의 삶의 궤적만큼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는 이 책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 법적 사례, 연구 결과 등을 통해 소수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복합적인 문제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통찰력 있게 풀어낸다.
'잘못된 삶(wrongful life)' 소송이라는 사례는 산부인과 의사의 실수로 장애아가 태어난 경우, 이를 손해로 간주해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의미한다.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도 자신의 출생을 '손해'라고 느꼈을지 모른다고 고백하면서 '잘못된 삶'으로 지칭되는 사회소수자들에 대한 담론뿐 아니라 ‘사회적 기준, 정상성‘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고유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의 의미와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잘못된 삶'이란 나쁜 짓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않는 삶이다. 장애인뿐 아니라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 추한 외모를 가지고 있거나 질병이 있는 사람, 다수가 혐오하는 성적정체성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들은 배제와 차별 속에서 성장과 발전의 기회를 읽고, 결국 사회적 고립과 불평등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작가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연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설명한다. 이는 가식적이거나 거짓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과 삶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다. 그는 존엄을 형성하기 위해 '예의 바른 무관심', '섬세한 도움의 손길', 그리고 사람의 한 순간만이 아니라 긴 시간을 통해 쌓여가는 '초상화'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초상화란 단순히 신체적 모습이나 특정 상황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서사를 존중하며 전체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또한, 그는 사회적 차원에서 장애인의 권리 투쟁과 자기 서사권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오줌권'과 독립적인 삶의 기반인 '이동권'은 단순한 복지차원이 아닌 기본적인 신체적 자유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단순히 소수자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모든 인간이 가진 고유성과 다양성,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존중받아야 할 이유를 탐구한다. 끊임없이 비교와 열등감 속에서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그는 말한다. 인간은 결여된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고유한 빛을 발하는 존재라고.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누구든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실격당한 자처럼 느껴질 수 있다.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 나이가 들어 대중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나, 키오스크 앞에서 주저하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가진 취약함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공통의 기반이자 연대의 시작점이다.
이 책은 '무엇이 정상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함으로써 존엄의 순환을 이루는 삶이 우리 모두를 안도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 따뜻한 메시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