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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솔직한 그녀

사노 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를 읽고서

by 유랑행성

몸은 늙어도 마음은 그대로라거나, 나이가 들면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거나, 연륜만큼 지혜로워진다는

'나이 든 이'의 일기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100만 번 산 고양이'로 잘 알려진 일본의 밀리언셀러 작가 사노 요코는 수많은 그림책과 창작집, 에세이를 출간하며 여러 아동문학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그녀가 쓴 '사는 게 뭐라고'는 제목 그대로 가식이나 꾸밈없이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함과 당당함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에세이다.

뭔가 아기자기하고 귀여움이 넘치는 일본 할머니의 일상을 들여다볼 거란 예상과는 달리 털털하고 꾸밈없는 시크함이 가득한 책에서 작가는 '삶이란 그저 밥 지어먹고 내 모습 대로 사는 것'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사노 요코가 들려주는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느슨하다.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 침대에 누운 채 발가락으로 커튼을 젖히고, TV에서 본 '꽁치 오렌지 주스 영양밥'의 끔찍함을 직접 확인하려고 만들어보는 식이다. 한류 드라마 DVD 컬렉션에 재산을 탕진했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순간들이 순수한 행복이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암 진단을 받고도 애연가로 남아 있고,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우울증 보다 주위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암은 좋은 병이란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얘길 듣고 매일이 즐거워졌다는 작가는 긴 삶의 마지막에 죽음의 여정이 있음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가까운 친구는 절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친구들의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다.


까칠하고 시크한 사노 요코 할머니가 내 가슴을 울렸던 문장들이다.

- 좋아하는 데 이유 따위가 없다. 그저 좋은 것이다.

-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 죽음은 내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찾아올 때 의미를 가진다.

-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이 에세이에 특별한 사건이나 화려한 경험은 없다. 대신 그녀의 느릿느릿한 일상이 독자의 마음을 붙잡는다.

마치 누군가의 솔직한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친근하고,

"사는 건 그저 먹고 자고 일어나 다시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라 말하는 듯 담담하다.

고되고 힘든 삶의 시간을 보낼 때 '이게 뭐라고'라는 말 한마디로 그냥 던져두고, 엄마 밥으로 허기를 체우는 것 같은 따뜻하고 든든한 위로를 건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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