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디스커버리 공연을 보고
쉽게 여밀 수 있는 단추와 똑딱이. 넓지 않은 소매선과 무릎을 조금 넘는 길이까지
생활한복은 일상에서 조금은 특별한 취향을 뽐낼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한국의 전통악기들이 그룹 지어 공연을 하는 국악관현악단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악기 자체의 특이한 음색은 그대로, 공연하는 방식이나 연주자의 배치,
교향곡처럼 작곡된 창작곡들이 자아내는 화음은 참 독특하다.
서양의 오케스트라 보다 각각의 특색이 강해 독주에 적합한 듯 여겨지는 악기들이 훨씬 많고, 심지어 강약을 조절하기도 쉽지 않을 듯 한 꽹과리, 태평소 같은 타악기와 관악기들이 다양하다.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현악기나 관악기가 적어 어떻게 합주가 될까 싶었지만 나의 무지함은 다양한 창작곡과 레퍼토리로 쉽게 깨쳐졌다.
강하고 쨍한 소리가 이어지며 뭔가 어우러지지 못한 듯한 느낌도 들지만
때로는 서양악기와의 협연으로 완전히 다른 강렬함과 감동을 주기도 했다.
2층 첫 번째 열에서 내려다보며 관현악의 앞쪽에 배치된 현악기 부대, 가야금, 거문고, 아쟁 연주자들이 대부분 멜로디의 베이스를 담당해서 인지 거의 쉬지 않고 튕기거나 열심히 팔을 저어 대고 있었다. 특히나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두 팔의 간격이 좁고 늘어뜨리며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음을 잡는 손과 대를 문지르는 팔이 널찍이 떨어져 있고 정말 쉬지 않고 줄을 문지르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 마치 뭔가를 열심히 썰고 있는 듯 보였다.
예전 1층에서는 이렇게까지 연주자의 연주장면이 보이지 않아서 못 느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유난히 현악기가 많아 두드러져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1층 좋은 좌석을 벗어나도 이렇게 다양한 위치와 시각에서 더 많은 걸 배우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장엄한 아악 연주나 판소리 정도로만 국악을 경험했던 나의 좁은 식견이 크게 흔들리고 생경한 소리에서 시작된 자각은 음악이란 범위를 넘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되었다.
익숙함과 친숙함으로 둘러쌓여 있는 일상이 삶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퇴행시킬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여행에 열광하고 낯선 곳으로의 이동이 경험과 앎의 깊이를 더하게 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겠지.
사실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꼭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지 않아도 내 삶의 반경에서 벗어나는 시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최적의 루트가 아닌 다른 길로 가보거나 한번도 타지 않은 버스를 타고 낯선 동네를 지나가거나, 서울을 여행하듯 새로운 동네의 카페와 맛집을 찾아 다니고, 여행지에서 하듯 도시의 온갖 이벤트와 주요명소를 방문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의 특별전을 섭렵하면서 매일 여행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으론 다 알겠는데... 정작 달라지지 않는 일상에서
‘무엇이 되었든 우선 하고 본다’ 가장 쉬운 해결책이 아닐까. 너무나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를 나도 함께 살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