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이자 창업일기
2022.10.31 10년의 회사원으로서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퇴사.
2022.11.01 사업자가 되었다.
벌써 퇴사 후 창업한 지 어언 6개월,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간 너무 바쁘고, 정신없어 기록에 소홀했는데 새로운 시작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 현재에 갇혀 좌절하지만 변화를 주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 나의 퇴사와 창업의 우여곡절 이야기가 큰 도움까지는 아니어도 작은 응원이 되길 바라며 모처럼 브런치에 들렀다.
그간 내 브런치를 봐온 사람은 알겠지만 3년 전 코로나가 터진 후 가장 타격을 입은 여행 업계에 종사했던 1인으로 지난 3년간 나의 일과 직장이 많이 흔들렸고, 그 사이 함께 일하던 좋은 동료들을 보내며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직장생활동안 난 한 번도 내 사업을 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즉흥적으로 퇴사와 창업을 결정한 것도 아니지만. 창업이란 사업이란 무언가 남다른 재능이나 아이템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래서 나는 처음엔 이직을 먼저 준비했었다.
그런데 아마 10년 차 아님 그 언저리의 커리어 경력을 갖고 있는 팀장급 회사원들은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창 일할 대리 급 주니어 시절의 이직과 10년 차 무거워진 경력과 연봉으로 움직여야 하는 시니어 급의 이직은 그 난이도가 너무 달랐다. 주니어 시절 이직만 생각하고 덤볐던 내게는 공고를 볼 때도 고민이 이어졌고, 업계를 바꿀 생각이 없던 터라(이미 지난 10년간 많은 업계에 발을 담가보고 결정한 여행 업계였다) 내가 해보고 싶은 업무의 포지션에서는 더 가벼운 직급을 원했고, 내가 원하지 않는 업계의 동일 포지션에서만 오퍼들이 왔었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흘러 그나마 해보고 싶고, 업계를 벗어나지 않는 포지션에서 최종 합격을 했는데 처우에서 또 문제가 생겼다. 기존 내가 하던 업무에서 확장하는 업무 포지션이었던 그곳은 내 지난 경력을 모두 인정해주지 못해 이미 10년 차 팀장/과장급인 내게 대리 이상 포지션을 줄 수 없다고 통보했고, 처우 논의 과정에서 보수적인 기업문화가 너무 강하게 느껴져 결국 나는 입사를 포기했다.
마지막 발버둥
그때가 작년 3월 말. 나는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내가 더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있을지, 지금 회사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대표와 개선 방향에 대해 강력하게 건의하고 제안했다. 당시 전 직장은 정말 풍전등화로 회사 창립멤버부터 최근에 들어온 사람들까지 한 두 달 사이 줄줄이 퇴사가 이어지고 있던 상황. 대표도 내가 말하는 포인트를 공감했고 나는 정말 마지막으로 개선을 시켜보자 총대를 메었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같은 문제 상황이 돌림노래처럼 되풀이되며 나는 정말 좀비처럼 일했다. 감정 없이, 생각 없이 쌓여 있는 업무를 쳐내기에 바빴다. 내 일기장엔 늘 불만과 부정적인 말들로 가득 찼다.
그러다 집에 가는 퇴근길,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좋은데, 대표만 바뀌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럼 그냥 내가 대표를 해볼까?
늘 좋기만 한 일도 안 좋기만 한 일도 없다더니. 정말 벼랑 끝까지 몰린 위기의 순간에서 나는 이 지옥을 탈출할 용기를 내었다.
좋아하는 웹툰 원작 드라마 미생에서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그 무서운 말에 공감하면서도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삶, 평화롭진 않지만 즐거운 지옥이 될 수 도 있다는 생각.
그리고선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이렇게 부정적인 에너지와 마인드를 갖고 회사에 있는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더 늦기 전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체력이 있을 때 한번 내 것을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그렇게 대표에게 퇴사를 얘기하고, 인력이 너무 부족한 사정을 알기에 1달 반의 넉넉한 노티스를 줬다. 대표가 놀라지 않은 게 더 놀랐지만 ㅎㅎ 좋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도 한 때(물론 코로나 전이지만) 이 회사가 나에겐 신의 직장이고, 영영 뼈를 묻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리고 하나씩 정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함께 일했던 거래처, 기자들, 클라이언트에게 성심성의껏(연애편지보다도 고심해서 단어 하나하나를 골랐던 것 같다) 그간 감사했음을 전했고, 역으로 더 많은 감사와 사랑과 응원의 답장을 받았다. 내 지난 10년 커리어가 헛되진 않았구나 생각하며 감사하고 또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앞으로 좌충우돌 창업일기, 많은 기대 해 주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