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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Sep 12. 2016

신체야말로 큰 이성이다

긍정적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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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도둑질하거나 착취당한 사람이 파업한다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설명되어야 할 것은 배고픈 사람 중 대부분이 왜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착취당한 사람 중의 대부분이 왜 파업을 하지 않는가 하는 사실이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Phaidros에 나오는 ‘마부와 그의 마차를 끄는 두 마리의 말’에 관한 이야기를 보자. 두 마리 말 중 한 마리는 마부에게 순응하는 아름답고 기품 있는 말이며, 다른 한 마리는 성격이 사나워 다루기가 수월치 않은 말이다. 한 마리는 이성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욕망과 충동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전자는 영혼의 세계, 신적인 세계, 천국의 세계를 나타내지만, 후자는 신체의 세계, 인간의 세계, 지상의 세계를 나타낸다.”


***


윌리엄 글라써(William Glasser)의 『긍정적 중독』(한국심리상담연구소, 1997)은 ‘우리를 약하게 하는 대신에 강하게 하는 중독이 있다면 어떨까?’ 묻는다. 일반적인 중독자가 가진 것은 중독 약물을 찾기 위한 단기적인 힘이다. 사랑과 가치를 찾는 일은 장기간에 걸친 불확실한 탐색이어서 그럴 힘을 갖지도, 원치도 않는다. 짧은 길이 있는데 왜 긴 길을 택하겠는가? 그렇다면 정말 긍정적 중독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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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어떤 자극에 대해 기쁨을, 다른 자극에 대해 슬픔을 느끼도록 하는, 그리고 어떤 행위를 바람직하다고 장려하고, 다른 행위를 사악하다고 금지하는 기준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계기로 그런 정서들이 다른 정서들 때문에 전복되면 기쁨과 슬픔,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은 달라지고, 결국 정체성 또한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 신체 안에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정서들 사이의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신체에 대해 '하나의 의미를 지닌 다양성이고, 전쟁이자 평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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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알콜릭은 결국 내 문제가 되었다. 남편은 아무리 적게 마셔도 소주 1병은 마셔야 잠을 잤다.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면서 밥은 걸러도 술은 챙겼다. 돌아가신 친정 아빠도 알콜릭이었다. 남편이 첫인사를 왔던 날, 내가 충격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실은 우리 집에 그렇게 많은 종류의 술이 있었다는 것과 남편이 술로 아빠를 이겼다는 것이었다. 와, 얘가 아빠를 재웠네, 정말 멋진 놈이구나.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괜찮은 놈 하나 건졌구나, 신난다, 행복하다, 그랬었다.


내가 아빠에 대해서 ‘알코올 의존증’이라고 묘사하게 된 시점도 돌아가신 뒤였다. 살아계실 때는 그게 그건지 몰랐었다. 그저 ‘술을 좋아하신다’ 정도였다. 얼마나 좋아하면 매일 드실까, 좋은 술 있으면 사다 드려야지, 그랬었다. 그러니까 남자가 술을 매일 마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왜 아빠에겐 술을 사다 드리기까지 했으면서 남편의 음주에는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경제적 부양능력의 차이였을까? 남편이 경제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면 나는 남편의 알콜릭을 견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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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란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힘들의 복합체에 다름 아니다. 그런 힘들의 갈등과 경쟁이 조정을 거쳐 일시적인 평화를 유지할 때, 힘들의 잠정적인 중심을 우리는 ‘자아’ 혹은 ‘주체’라고 부른다. ‘주체(자아)의 영역은 힘 중심에 따라 계속해서 성장하거나 감소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신과 육신의 주인 자리는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다. 신체는 항상 당신의 극복을 꿈꾸는 생성의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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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씨!

나는 ‘결혼’에서 벗어나고 싶었어.

뭘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뭘 '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

뭐가 다를까?


20년 동안 내게 습관처럼 달라붙어 있던 것이 떨어져 나간 뒤에야 알게 됐어.

그동안 ‘벗어나는 자유’만 생각하느라 ‘꿈꾸는 자유’를 잃었다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을 밀어내느라 원하는 것을 당기는 걸 까먹은 거야.

부모를 떠난 독립이라고 생각했던 ‘결혼’도 그랬어.

나는 부모·형제를 벗어나고 싶은 거였더라고.


나도 술 좋아해.

그렇지만 술 마시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더 많아서 좋아.

그 덕분에 니체 씨도 만났잖아.

나, ‘꿈꾸는 자유’를 다시 찾고 싶어.


길고도 먼 길을 가야 하는데 도와줄래?

우린, 친구잖아,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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