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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Sep 14. 2016

노동이 아니라 전쟁을 권한다

가사노동에서 맞벌이와 외벌이, 그리고 독립

***


“차라투스트라는 대담하게도 사람들에게 전쟁을 하라고 가르친다.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것은 독일 병정처럼 ‘유니-폼을 입은 군졸들이 아니라, 유니-폼 하지 않은 전사들’이다. 그의 전사들과 대비되는 자들은 평화 애호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너희들에게 권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전투’라고 말한다.”


“권태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 일반에 대한 습관이다.

노동이 자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유 활동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자유에 대한 별도의 욕구, 심지어 게으름에 대한 욕구까지 갖는 것이다. 노동을 거부하는 일은 게으름이나 나태로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은 자기 가치를 창조하는 자유로운 활동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활동을 노동과 엄격히 구분했던 것이다.”


***


-「육아, 왜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을까」(일다 2006-05-12) 중에서 일부이다.


우리나라에서 엄마와 아기는 분리되지 않는다. 백일 지난 아기를 가진 내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젖을 주고, 방을 환기하고 닦고 쓸고 젖을 주고, 밥을 짓고 먹고 젖을 주고, 아기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젖을 주고, 빨래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젖을 주고, 밤새 자면서도 젖을 주는 그런 식이다. 다른 돌볼 사람이 없는 집에서 내 몸은 아기에게 담보된 숙주 같은 것이다. 아기는 내 몸을 파먹고 자라난다. 나는 꼼짝 않고 가고픈 곳, 하고픈 것, 먹고픈 것까지 잠시 미뤄둔다. 그래서 아기는 살 수 있다. 


이 양육의 시간은 오롯이 나에게 떠맡겨진 것이다. 떠맡겨졌을 뿐 아니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잊혀진 일이다. 집에서 별안간 엄마가 된 여성이 어떻게 아기를 키워내는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냥 엄마니까 알아서 키우겠지, 애는 잘 자라겠지 하고 당연히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여긴다. 엄마의 역할을 맡은 여자가 집안에서 홀로 어떤 꿈을 꾸는지, 지쳐 아기를 문득 어떤 눈으로 보는지, 창밖을 보면서 어떤 서글픔을 느끼는지, 언제나 쌓이는 집안일에 어떤 분노를 느끼는지, 그리고 자신의 욕망과 헌신 사이에서,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말할 수 없어 죄책감과 실어증 사이에서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는지 모르는 것이다. 


아기를 가진 엄마에게 돌아오는 말은 공감이 아니라 평가다. 엄마인데 이것도 모르냐, 이것도 못하냐, 아기가 왜 아프냐, 집안 꼴이 이게 뭐냐, 그 평가는 언제나 집 곳곳에서 소리 없이 들려온다. ‘엄마’의 기준은 쩌렁쩌렁하고 높다. 그 소리에 쫓겨 여성은 종일 쉬지 않고 안간힘을 써 일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어간다. 


***


니체 씨!

애 안 낳아봤지? 애 안 키워봤지? 

난 말이야, 아이 낳고 키우고 그러면서 제대로 다시 태어났어. 

큰아이 백일잔치하고 돌잔치하면서, 둘째 백일잔치하고 돌잔치하면서, 나는 완전 다시 태어났다니까. 

현모양처, 그게 사람 잡는 거란 걸 알았지. 

그게 말이야. 내가 할 짓이 아니더라고. 

무슨 도인이나 수도승이나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선 어떻게 그렇게 살아. 

난 못살아. 그래서 관뒀지. 깨끗하게 손 털었어. 난 싫었거든. 


두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로 생활하며 결혼에 지쳐있던 10년 전, 내가 찾은 답은 ‘독립’이었어.

피해자인 구조에서 악역을 도맡으며 화를 낼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이 권태로웠고, 남편은 자기 몸도 주체하기 힘들어해서 기댈 곳조차 아니었으니까.


단절된 경력으로 재취업한 직업은 학습지 교사.

온통 완전 초보에게는 일하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어.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이유가 오만가지였지.

호칭만 ‘선생님’인 학습지 교사가 실제 하는 일은 회원 관리, 즉 영업이야. 

매달 마감을 하고 매달 새롭게 시작을 하는 스트레스가 이게이게 또 죽여줘.


일을 시작한 몇 년은 매일 눈물로 화장을 지웠어.

살림 제대로 하지 않으려면 일을 그만두라고 윽박지르는 남편은 적군이자 걸림돌이자 지옥 그 자체였고,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은 밤까지 무거운 가방을 들고 시계를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수업을 끝내고 돌아간 집은 쉴 곳이 아니었어.

귀가했다고 일이 끝난 것도 아니어서 새벽까지 채점하곤 했지.


한동안 네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했어. 

남편의 실직은 계속되었고 나는 빠르게 지쳐갔고, 온몸 구석구석에서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며 생활하다 보니 행복하지 않았고 아팠어.

좋은 생계부양자가 된다는 건 너무나도 힘겹고 어려운 일이었어.

남편이 원망스럽고 밉기만 하더라고. 


내가 원한 건, 남편과 함께 맞벌이하는 것이었지 나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었거든. 

나아가서 내 꿈과 삶을 병행하는 것이었지 꿈을 잊은 채 삶에 치여서 사는 것도 아니었고. 

10년을 계획했던 일은 작년 말, 9년 만에 정리했어.

고3인 작은 아이의 수능이 끝났고, 이사를 해야 했고, 결혼도 끝내야 했고, 다시 살아야 했으니까.


니체 씨!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내가 꿈꾼 ‘좋은 엄마’는 일찌감치 물 건너간 것 같고, 다른 꿈은, 아직, 글쎄, 그걸 잘 모르겠어.

실은, 있어. 있는데, 자신이 없어.

이젠 그 무엇도 해도 되는데 말이야.

아아… 난 정말 바본가 봐.

응원 좀 해주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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