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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Sep 14. 2016

새로운 우상인 국가를 조심하라

결국엔 다 내 문제

***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이 독배를 들게 되는 곳, 나는 그곳을 국가라고 부른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이 자신을 잃게 되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서히 자신의 목숨을 끊어가면서 ‘생’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


2014년 12월. 결혼 20주년이라면서 아이들이 축하해 주었다.

케이크에 촛불을 끄면서 불쑥, 이혼하고 싶다는 말을 할 뻔했다.

행복하지 않다고, 다르게 살고 싶다고, 헤어지고 싶다고, 말을 할 뻔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를 계속 눌러 놓고 있었다.

그것도 꾹꾹. 게다가 어느새 습관이 되어 버린 걸 알게 되었다.

내 욕망을 누르고 누르다가 어느 순간 참지 못해서 폭발하면 그제야 어쩔 줄 몰라서 쩔쩔매는 것 또한 내 패턴이었다.


세려면 셀 수도 있겠지만, 굳이 세고 싶지 않은 남편의 실직과 재취업이 반복됐던 2014년.

나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다.

남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망할 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40대 가장의 어깨는 무겁고 무릎은 시렸으리라.

몇 년째 마누라에게 돈을 갖다 주지 못하는 심정은 오죽했으랴 싶었다.

다이어트엔 맘고생이 최고라며 20년 만에 처음 보는 빼빼 마른 몸매를 유지했다.


애쓰네, 안됐다, 불쌍하다, 여겼다.

죽어라 일해도 답은 없고 그러다 그냥 죽을 것만 같은 개떡 같은 사회 탓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내 문제가 되었고 화들짝 반응하는 나에게 속수무책이었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냥 미안하기로 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서 미안하지만, 더 이상은 싫었다.

남편은 남편이고 나는 나였으니까.


나는 내게 답을 했고, 또다시 나쁜 년이 되기로 했다.


***


“국가는 가장 냉혹한 괴물이다. 국가의 모든 것이 가짜다. 잘 무는 버릇을 가진 국가의 이빨도 훔친 것이다. 그 내장도 가짜다. 너희가 국가라는 새로운 거짓 신을 숭배할 때 국가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가는 너희의 자랑스러운 두 눈을 매수하는 것이다.”


***


니체 씨!

나는 여러 번 별거를 시도했어.

결혼 초기에는 나 홀로 육아에 지쳐 힘든 데다가 혼자서 감당하려니 약이 오르기도 했고 매일 취해서 귀가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랬고, 아이들이 성장한 뒤로는 맞벌이가 시작되면서 가사노동을 분담하느라 그랬고, 남편의 실직이 반복되면서는 집에서 매일 마시는 술을 핑계로 그랬어.


남편을 이해하려면 할 수도 있어. 헬조선에서 여리고 약한 채로 나이를 더하다 보니 ‘알코올 의존증’이 깊어져만 갔다는 걸. 그러니까 나도 20년을 넘게 뭔가를 참고 살았겠지. 하지만 나도 나에게 약속한 시간이 있었어. 작은 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만 이었거든. 까마득하기만 하던 그 시간이 오긴 왔더라고. 나도 내게 시간을 준 셈이었는데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용기가 생겼어. 진짜로 더는 하루도 단 한순간도 견딜 수 없었어.


사람이 미워지면 체취도 숨소리도 싫어지더라. 남편도 느꼈을 거야.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 관계는 자연스럽게 그냥 바닥이 되더라고.


니체 씨!

누구의 잘못일까?

국가가 우리 관계를 얼마나 책임질 수 있을까?

다 부질없는 거더라.

실체도 없는 그따위 것에 놀아났다는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올라.

그냥 받아들이는 것뿐이야.

결국엔 다 내 문제니까 말이야.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는 건 ‘나’고, 지금의 나를 얘기하고 싶은 건 그대니까 이렇게 떠드는 거야.


고마워. 내 얘기 들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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