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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Sep 15. 2016

여자의 해결책은 임신이다

건강해지고 싶어

***


“여성은 항상 거리를 두고 남성에게 작동한다. 남자들이 말하는 여성, 사회가 만들어 온 여성성은 존재해 왔지만, 그것이 여성에 대한 참된 규정은 아니다. 여성은 무어라고 정의할 수 없는 성이다. 여성에게는 어떤 규정을 피하는 ‘거리’(distans)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자궁과 같다. 그것은 모든 것들을 발생시키는 비어 있는 공간이고, 일종의 거리이다. 자궁에서 강조될 것은 결핍이나 공허가 아니라 생산이나 창조이다. 자궁은 결핍의 공간이 아니라 넘침의 공간이다. 임신한 여성에게는 하나의 정체성이 부여될 수 없다.”


***


마흔 즈음의 나는, 내 나이가 너무 예뻤다. 문득, 이 예쁜 나이를 가만두고 싶지 않았다. 어른다운 대화도 나누고 싶었고, 손상당한 자존심도 회복하고 싶었고, 숨어버린 자신감도 되찾고 싶었다. 뭘 봐도 무덤덤하고 뭘 해도 시큰둥한, 나에게 더는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남편과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다. 남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내 나이가 예쁘다는 ‘역사적 진실’을 말해주길 바랐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 맘이었다. 


나는 대화가 고팠다. 마주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는 사람의 곁에 있을 때보다 더 잔인하게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없다. 대화가 사라진 우리의 관계는 죽어가고 있었다. ‘말하고 싶은 아내’와 ‘입 다물고 싶은 남편’의 만남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알면 행하라 했던가. 언젠가부터 결혼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닌, 살면서 일어난 사건의 하나였다. 다른 많은 일이 결혼의 공허한 쳇바퀴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남편에게서 벗어난 사고는 날개를 펼쳐 훨훨 날기 시작했다. 세상엔 괜찮은 남자들이 널려 있었다. 물론 두 번째 남편을 얻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후회는 한 명으로 충분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게 그저 좋을 뿐이었다. 


***


“너는 네 미래를 낳을 수 있는가?

너는 새로운 너 자신을 낳을 수 있는가?

인간은 위버멘쉬를 낳을 수 있는가?”


***


니체 씨!

콤플렉스 덩어리인 내가 건강해질 수 있을까?

나, 건강해지고 싶어.


누군가에 대한 책임, 의무 이런 거 말고.

그거 때문에 지쳐서 미워하면서 아프고 힘든 거 말고.

‘자유로운 나’이고 싶어.

한 번쯤 내 꽃도 피워보고 싶어.


‘운’도 만들어가는 거라며?

만들어보고 싶어.

더 좋은 내가 될 수 있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사랑이 되는, 건강한 누군가를 운명처럼 만나고 싶어.


결국 ‘나’를 만나는 거겠지?

내 한계를 확인하고 넘어서는 거겠지?

그러면 내가 아름다운 악기라는 걸 알게 될까?

집착이 아닌, 뭔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 없이, 오직 서로의 존재에만, 생각과 감정과 관계에만 집중해서 서로를 연주해 볼 수 있을까?


나, 그거 해보고 싶어.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건강할 수 있도록 그대가 좀 도와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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