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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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다면 그는 어린아이와 같으며, 세계가 신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그것은 아이가 노는 것처럼 순진무구한 것이고, 아이의 놀이가 그렇듯이 지칠 줄 모르고 즐거움에 겨워 쭉 계속될 것이다.”
“매번 던지는 주사위에 대한 새로운 기대 때문에 아이들이나 도박사들은 다시 다음 주사위를 던져보고 싶어 한다. 던지면 던질수록 더 던지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주사위 놀이에서는 ‘행위의 반복’, ‘생성의 반복’이 나타나고, 그것은 또한 ‘새로움의 반복’, ‘차이의 반복’을 의미한다.”
“내게는 용기라 부르는 것이 있다. 용기는 심연에서 느끼는 현기증까지 없앤다. 사람이 있는 곳 치고 심연이 아닌 곳이 있던가! 용기는 최상의 살해자다. 그것도 공격적인 용기는.
그런 게 생이던가? 좋아! 그렇다면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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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었을 아빠는 첫딸인 나를 아주 많이 예뻐했다고 한다. 동생들이 계속 태어나기도 했으니 어딜 가든 나를 안고 또는 목말을 태우고 다녔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술에 취해 밥상을 던지고 엄마를 때리고 했던 기억에, 무서워서 피했던 기억은 있다.
환갑을 앞둔 어느 가을날,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 가셨다가, MRI 촬영 전 바륨을 주사 맞고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의료사고 소송을 했지만 기각되었다.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황망하게 떠난 아빠는 가끔 꿈에서 뵙는데, 목소리가 없다.
내가 나를 찾고 꿈을 찾는 길에서 만난 ‘꿈 선생님’은 ‘내가 꿈꾸던 아버지’였다. 변화경영사상가인 그분은 시처럼 살다가 후두둑 지는 봄꽃처럼 떠나셨다. 글과 삶이 일치하는 ‘진짜’인 인생을 10년 정도 함께 공부하며 지켜볼 수 있었던 행운에 감사한다.
신뢰할만한 누군가의 인정과 지지, 후원과 관심을 원했던 나를 미소로 지켜봐 주셨던 분이셨다. 정말 잘한 결정 중 하나가 아내를 만나 결혼한 것이라고, 두 딸은 눈부신 은총이라고, 떠나는 순간까지 보여주셨던 진심을 담은 따뜻함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두 번째 사랑이었을까? 오랜 친구였던 남편은 똑똑하고 착하고 가난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어해서 밖에만 나가면 그저 좋은 남자였다. 좋은 사람이고만 싶었는지 집에는 잘 없었다. 일하고 술 마시고 자고 술 마시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 술 마시고.
결혼 후에 내가 본 남편은 집보다는 술집을 더 자주 다녔다. 결혼은 그러니까, 우리 관계의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이들 아빠였고 집에 들러서 잠은 자고 옷은 갈아입었으니까, (도대체 말이 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섹스는 자주 하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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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씨!
‘주사위’ 하니까 여섯 명의 남자들이 떠올랐어.
두 분은 돌아가셨고, 남편은 헤어졌고, 남은 세 명은 글쎄, 음, ‘애인 있어요’라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꼭 숨겨둔 애인’ 정도는 아니지만, 한때는 내 눈에만 보였던, 내 입술에 담아둘, 사랑을 닮은, 남자 1, 남자 2, 남자 3 들이야.
내가 첨으로 프러포즈를 한 남자 1.
내 인생의 키다리 아저씨 남자 2.
대체 불가능한 해프닝 남자 3.
이들을 언젠가 또 만나게 되려나?
요즘은 어떠냐고?
딱히 설명하긴 뭐한데, 애들 아빠를 가끔 만나. 내가 젤 편하대.
직장에서 일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할 텐데, 말할 사람도 없고, 누군가를 만나도 할 말도 없고, 혼자서 밥을 차려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시고 혼자서 말하고, 그러다 보면 나랑 만나는 날을 기다리게 된다나.
나랑 자면 잠도 푹 자고 살 것 같다고.
오래된 관계라서 헤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야.
생각해보면, 어느 시기로 돌아가서 다시 산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그러니까, 만약에 한 번 더 살라고 한다면?
I'm OK,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