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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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시대 자기 삶에 대한 거부만으로는 결코 날 수가 없다. 부정과 거부는 여전히 무거운 자들의 정신이다. 도약은 긍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자만이 자기 삶을 아름답게 창조할 수가 있다.”
“처음부터 ‘나는 법’을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심각해선 안 된다. 웃고 또 웃어라. 춤추고 또 춤춰라.
표정과 걸음걸이만큼 사람들의 상태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자유롭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환하게 웃는 사람, 사뿐사뿐 걷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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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씨!
10년 전 나는, 마흔을 앞두고 호되게 사춘기를 앓았어.
알맞은 시기에 잘 겪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뭐가 무서워서 죽은 듯 지내느라 죄다 건너뛴 바람에 다 늦어서야 된통 걸린 거였지.
10대, 20대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았거든.
말 잘 듣는다고 여기저기서 칭찬도 많이 받고 그랬어.
그러다 서른이 됐는데,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거야.
그러니까, 음… 아이들 키우면서 다시 태어났다고 할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예방접종을 하면서 깨달았어.
나도 이렇게 컸겠구나, 이렇게 소중했겠구나, 이렇게 예뻤겠구나.
그런데 왜 나는 그걸 잊고 살았을까?
왜 집이 싫었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그랬나?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부모를 다시 만났고 내 화는 폭발하고 말았어.
오래가더라.
그대가 그랬지?
정 싫으면 그냥 지나쳐 가면 될 것을 그곳에 머물면서 계속 ‘꽥꽥거리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혹시 험담하고 비난하면서 닮아간 것 아니냐고.
맞아, 그랬어.
내 안의 엄마랑 아빠가 또 싸우고 있더라고. 이번에 나까지 셋이서 말이야.
어릴 적 부모는 그때의 내 나이랑 비슷했으니까 싸울 만도 했어.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덩어리들이 어찌나 들끓는지 깜짝깜짝 놀랐어.
그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더라고.
내 아이들에게 같은 화를 물려주기 싫어서 작정하고 3년쯤 나를 들여다봤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꼬맹이 녀석을 잘 안아주면 되겠구나 싶기도 했어.
그런데 이게 무슨 화수분도 아니고, 끝이 없는 거야.
그러다 또 깨달았지. 정리될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을.
그냥 안고 가야 하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는 또 다른 나라는 것을.
기대만큼 정리되지 않은 결론은 허탈했지만 나름 소중한 시간이었어.
그때 내 ‘화’를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변화하지 못했을 거야.
변할 생각도 안 했겠지.
계속 나를 미워하면서 화가 나 있지 않았을까?
그 뒤로 ‘꿈’이라는 걸 꾸게 됐어.
하고 싶은, 되고 싶은,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난 거야.
어찌나 설레고 벅차고 떨리고 반갑던지 뜨거운 눈물을 엄청 쏟았지 뭐야.
그런데 마흔을 앞두고 꿈을 꾸려니까,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남편은 내 편이 아니었어.
잠시 접어둘 수밖에 없었지.
하는 수 없이 일을 선택했고, 짬짬이 꿈도 찾았지만, 미친년 널뛰듯 했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뒤뚱거리느라 일도 꿈도 일상도 죽도 밥도 아니어서 자연스럽게 꿈은 미뤄졌어.
‘꿈’은 부지런하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고.
핑계라고 해도 할 수 없어. 그땐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렇게 또 10년이 지났더라.
나 요즘, 한쪽에 고이 접어서 미뤄뒀던 그때 그 ‘꿈’을 다시 만나고 있어.
얼마나 들뜨고 두근거리고 울컥거리는지 몰라.
그동안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았던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다시 찾게 되어서 한없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야.
니체 씨!
난, 지금의 내가 좋아.
아직은 춤추고 웃고, 그런 건 잘 못하지만 천천히 배워보지 뭐.
기억할 수 있을 거야.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분명히 웃으며 춤도 추고 그랬을 것 같아.
참, 나도 웃는 얼굴은 예쁜 편이야.
그거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