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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Mar 09. 2017

휘청이는 나날

헤어지자 1

꽤 긴 글들이었다 

마흔일곱 

나는 나의 욕망에 몰입했고 그런 나를 기록했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에게 쓴 글들을 나 몰래 남편이 읽었다 


어떻게 그랬을까? 

뭘 얼마나 알게 되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또, 끝났다 


*** 


이 글도 찾아 읽을 너에게 


 정직하지 못했어 

 솔직할 수 없었으니까 

 그걸 욕한다면 욕먹을게 

 그런데 내가 왜 그랬을까? 


 행복하지 않았어 

 거짓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내가 싫었어 

 그래서 헤어지자 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어 

 슬프고 우울했어 


 사랑? 

 네 말대로 난 사랑을 몰라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 없어서 

 할 줄도 줄 줄도 뭣도 몰라, 맞아. 


 그렇지만 알려고 노력했고 실천해 보려고도 했어 

 너의 실직 앞에서 난 노력했다고 

 사랑해보려고 최선을 다했어 

 그리고 알았어 


 난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 힘들었고 지쳤어 

 그래도 아이들까지는 뭐라도 어떻게 해보겠는데 너는 싫어지더라 

 그리고 또 알았지 


 사랑은 혼자 노력하는 게 아니라는 걸 

 또, 넌 나를 무척 오랫동안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도 

 그래서 끝냈어 

 우린 그때 이미 또 끝이 난 거였어 


 나는 네가 무섭다 

 남에겐 법 없이도 살 너의 그 부드러운 가면 속에 감춰진 나에 대한 잔인한 폭력성이 두려워 

 나 나쁜 년 맞는데 

 너도 착하지 않아 


 억지로 살지 말자 

 제발 부탁해 

 잘 헤어져 주라 

 진심이야 


 처음 선택도 내가 했고 지금의 선택도 나야 

 그땐 사랑을 선택했고 이젠 이별을 선택했어 

 존중해줘 

 아직도 나에 대한 애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


검찰에서 전화가 왔다

통화하는 동안 불편했다

불안했다는 것이 더 맞을까?


내 선택에 대한 불안이었다

잘하고 있는 건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나는 왜 흔들렸을까?

내 삶이고 내 선택인데 왜 그랬을까?

나만의 삶이 아니기에 그랬나 보다


남편의 삶이고, 아이들의 삶에 내가 개입하는 거여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 그래서 나는 착한 결정을 하려고 했을까?

착한 결정을 하고 그 감당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이자고 운명이라고 화도 못 내고 우울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미친 듯 누군가를 만나서 외로움을 달래며 이런 게 사랑이라며 주저앉아 개처럼 고양이처럼 까르릉 거리며 또 다른 가면을 만들어 뒤집어쓰는 도돌이표..


이런 걸 원했나? 


***


나쁜 여자 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거 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나쁜 년 하기로 했다

돌아보지 마라

가기로 한 길, 제대로 걸어가라

흔들리지 마라

지금껏 하지 않은 결정과 선택들을 감당해야만 한다

누구도 나를 대신하지 않는다


나, 나쁜 년 맞다

착한 여자, 좋은 여자, 개나 줘버려라 

그러다 이 꼴로 이러고 있다

20년 살았으면 됐다

더는 이 공부하지 마라

이젠 다른 공부 하자


잘 버려라

나의 이 콤플렉스들 

착한 여자 좋은 엄마 온갖 거짓의 가면들 

벗어버리자

그리고 진짜 나로 살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나로 사는 것이다

지금껏 잘못한 거 알았으면 깨끗이 정리하자

이것도 내 선택임을 인정하자

어렵겠지만 


***


이혼, 하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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