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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영 Mar 10. 2017

흔들거리는 동안

헤어지자 2


눈이 너무 시다.

그래서일까? 아님, 책이 재미없어서? 어쨌든 책을 읽을 수가 없다

실은, 쫌 울고 싶다


남편의 카톡 메시지가 찌질해서 슬펐다


30 입금했다~

빵꾸난 마음을 메우기엔

매우 부족하다....


이따위 글에 뭉클하다니

3백, 3천도 아니고 30

돈 30만 원에 서로 이리 문자나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사는 게 참 거지 같다


***


아프다고 쉰다던 남편이 알바 전화를 받고는 나갔다

열심히 사는데 힘들다 

지켜보는 것도 버겁다 

불쌍하다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그냥 가끔만 보고 아프면서 살아가자

내 선택은 거기까지다

같이 힘들기 싫다 

감당하기가 몹시 힘들다


***


작은애 학원비 입금해주기로 한 날인데.. 

남편 월급날이라서 10일이라고 했는데.. 

월요일에 입금이 된단다

월요일이면 12일이다

아마도 이런 일들이 날 지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남편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테고 난 나대로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왔고

없으면 없다고 말하는 그 치사한 솔직함이 지겹다


***


주말에 남편이 왔다

여전히 대책 없고 답이 없는..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이 사람과 즐길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꼴도 보기 싫다 하고선 소주 4병이면 같이 잔다

내 몸이 기억하는 익숙함에 욕 나온다


***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왜 이토록 낯설고 어려운지

왜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뒤돌아보고 의심하는지

뚜벅뚜벅 내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힘겹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으면 지나는 이에게 묻기라도 하련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는다

다들 어디에 숨어 있는 건가?


나는 내가 궁금한데 내 속엔 내가 아닌 것들로 가득한 것만 같다

정리정돈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 얘네들을 어쩌면 좋담

다 쓸어 담아 버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이 또한 용기가 필요하다


헛되고 헛되다

부지런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쓰레기만 쌓아놨나 보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한동안 끄집어내서 털어버려야겠다

일단 청소부터 시작하자

어쩌다가 나는 나를 원망하게 됐을까?


***


왜,

내 머릿속에서는 내게 일어나는 오만가지 일들의 결론이 자꾸만 남편일까?


남편 탓을 하자니 그러긴 싫고

내 얘길 하려니 남편 얘길 해야 하고

남편 얘긴 빼고 하고 싶고


그래서 자꾸만 짜증이 나고 울고만 싶다


***


문득,

그냥 죽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다 귀찮다


***


생리,

왜 안 하지?

임신은 아니고

폐경인가?

아 진짜 골고루 한다


***


글쎄, 잘 모르겠어

어느 순간 사는 게 재미없어졌거든

누군 재밌어서 사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싶었어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고 실제로 아무것도 못했어

사는 것도, 안 사는 것도

둘 다 시큰둥해졌지

귀찮았어

하루 이틀 무기력에 익숙해지는 나를 느꼈지만 어쩌질 못하겠더라고

그냥 내버려 뒀지

그랬더니 우울이 찾아오더라


***


너는 어쩌다가 내게 다가와 머물다 떠났니?

너를 떠올리며 흘리는 눈물이 원망이나 미움만은 아니라 미안함이나 연민 같은 따스함이라 다행이야

다른 사랑을 꿈꾸는 나를 이해하지는 말아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한 호기심 같은 걸 거야

이게 다는 아닐 거라는 내 욕심 같은 거

언젠가 다 부질없다 느낄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알고 싶은 바보 같은 미련함 일지도 모르지


미안하다

그냥 미안할 게

나도 나를 어쩔 수 없어

나라도 날 어쩌고 싶으니 내버려 두려고 해

어쩌면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인지도 몰라서 말이야

네게도 찾아올 사랑을 이제는 질투하지 않을 거야

좋은 사람 만나고 많이 웃고 네 사랑을 하길 바래

널 위한 삶이 펼쳐지길 기도할게

넌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꼼꼼하니까 잘할 거야

자주 아프진 말고 건강 챙기며 지내

나도 그럴게


이렇게 또 너를 보낸다

잘 가

안녕


***


남편, 네게 뭐라도 얘기하고 싶은데 넌 아무런 소식도 없구나 

어디서 뭘 하고 사니?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단 생각, 했었어 

난 아마도 아이들이랑 셋이서 살아갈 테고 이사를 하면 여행을 떠날 테고 그럭저럭 살아가겠지 

시간이 흘러 언젠가 너를 만나면 그때 우린 남남처럼 마주하겠지 


진단서 보내고 나면 네게도 연락이 가고 법원쯤에서 만나려나?

협의이혼? 용어도 낯선 세계를 경험하겠지

어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지 몰라 

우리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지루한 일상이 될 수도 있을 테고.. 

이미 낯선 시간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을 추억한다면 우린 어떻게 기억될까?

두 달이란 시간이 갔다 

시간이 널 어디로 데려갔니? 

난 너를 더 싫어하게 됐고 너도 마찬가지고 우린 이미 끝난 관계인데 

뭐가 더 남은 걸까 아직도 바닥이 남았을까?


잘 헤어진다는 게 내 욕심이었다면 인정할게 

지치도록 널 미워해야 해서 힘들다 

그만하고 싶을 정도로 고단하지만 난 여전히 욕심낸다 

잘 헤어지자 

잘 끝내자 


우리 이제 이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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