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영 Mar 27. 2017

생지옥

7일째

지옥이었다

늦은 오후, 끊이지 않고 카톡이 왔다

처음엔 수업 중이라서 무시했다

수업을 마치고 이동하는 엘리베이터에서 확인했다


그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둘 다 죽이겠다고 했다

가슴이 뛰고 정신은 아득하고 손이 떨렸다

진정하고 수업을 하느라 진땀이 났다


무섭고 두려운 공포 그 자체였다

칼을 들고 달려들었던 남편이 떠올랐다

목을 조르며 싸늘하게 희번덕거리던 눈빛이었다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어서 그만 감아버렸다


계속 반짝대는 카톡을 서둘러 지우기 바빴다

날카로운 적의로 가득한 증오의 욕설이었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겁이 났다

작은 인기척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무슨 정신으로 수업을 마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벌렁거리는 심장으로 집 향하는 길이 아득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혹시 와있을까 싶어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다


때리면 맞아야지, 하고 현관문을 열었나 보다

아이들이 걱정되기도 했고 어차피 끝이기도 했다

작은애가 샤워하고 있었다

남편은 몇 번 더 카톡을 하고는 멈췄다


내가 그동안 이런 사람과 살았구나

알고도 모른 채 한 나는 누구인가?

진짜 정말 끝이다

어떤 바닥이 더 남았을까?


친정에 가야겠다

편한 공간은 절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

잠시만이라도 머물기로 하자

그 무엇보다 안전과 보호가 절실하다


그래도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까?

엄마를 떠올리니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결국에 또 엄마를 찾는 내가 한심했다

정말이지 가고 싶지 않은 그곳이다


밥상을 내던지던 아빠가 떠오르고 시퍼런 눈을 한 엄마가 거기 있다

두려움에 웅크리고 떨던 내가 있고 큰소리만 들려도 까무러치던 내가 있다

아빠의 폭력은 남편의 폭력과 닿아있고 나는 그때의 나로 돌아간다

그곳에 엄마는 없다


엄마가 있지만, 엄마가 없는 친정에 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끔찍하고 절망적이다

이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엄마를 닮은 나처럼 내 딸들도 나를 닮을까?


어쩌다가 나는 그때의 나를 만났을까?

남편의 폭력인가?

나의 외도인가?

원초적 그리움인가?


정신 차려야지, 를 생각하느라 너무 바쁘다

자꾸만 까먹어서 기억하느라 몹시 힘들다

정신 놓으면 안 되는데, 기절하면 안 되는데

가느다란 정신의 끈을 잡고 있기가 아주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그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