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째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던 게 남편이었을까? 나였을까?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아이들을 챙기지 못했다
혼란스럽다는 구차한 변명도 생략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뒤죽박죽 어지러운 틈에도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모습이 짠했다
나라도 무슨 얘기든 꺼내서 불안한 마음을 전해야 했다
둘째는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혼은 하지 말라던 어린 날을 후회했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이라 더 미안했다
큰 아인 요 며칠 불안했다며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기억 속의 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을까?
첫 기억은 언제일까? 문득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남편은 다시 결혼했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달라고 했다
뭐지? 왜지? 변덕을 부리기로 했나?
일부러 생뚱맞은 소리를 꺼내는 건가?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매일 술에 취해 심한 감정 기복을 보여서 조마조마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직접 얘기한다고 하더니 까먹었나?
아이들은 안중에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아무 얘기라도 하라면서 다그쳤다
무슨 말을 해도 말꼬리 잡힐 것을 알지만, 툭 내뱉어 버렸다
2년만 떨어져 살다가 다시 결정하자고
일단 수능까지만이라도 떨어져 지내자고
남편은 무슨 말인가를 쏟아내려다가 말고 담배를 챙겨서 나갔다
잠시 깊은숨을 내쉬었다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하게 서러웠다
우리 결혼은 이만하면 됐다, 고 내게 전했다
여전히 잘 모른다
뭐가 잘 사는 건지 아닌지도 살수록 모르겠다
그나마 알고 있는 건 지금 이대로는 아니라는 거
그러니 다른 삶을 선택해 보자는 거, 그것뿐이다
뭔가를 선택하려면 뭔가를 포기해야 한다
지금의 내겐 결혼이 그렇다
결혼을 포기할 힘이 필요하다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은 짧지만 길다
당장 죽는대도 어쩌면 오래 산대도 피할 수 있는 건 피하자
내가 원하는 건 어쩌면 그런 선택들이다
누구의 것이 아닌, 나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 말이다
내 선택을 책임지고 감당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결혼이라는 도돌이표 앞에 서는 일만은 그만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