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lly Yoon May 30. 2021

시간을 담는 사람들

사진작가를 만났다.

나는 적당히 취해 있었고, 바깥공기는 차가웠다.


 술 좀 깰 겸 술집 문 앞을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한쪽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손 끝에는 거의 다 피워간 담배가 끼워져 있었다. 어딘지 낯익은 얼굴이, 나와 같은 술집에 있던 사람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눈인사를 건넸다. 남자는 내가 담배를 피우러 나온건가 싶어 담배를 권했다. 내가 거절하자 자신의 담배를 땅에 지져 뭉개고는 무릎을 세워 앉아 있던 다리를 힘들게 폈다. 나보다 손 한 뼘이 안 되는 작은 키를 가진 남자는 동안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거 볼래요?"

그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이밀며 나를 불렀다. '다짜고짜 핸드폰의 사진을 보라고? 재미있는 사람이네?' 나는 그의 오른쪽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고 서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빗물에 반사된 사물이 위아래로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옆으로 밀며 다른 사진들을 보여줬다.


에당시 많이 취해 있어서인지 사진을 보는 내내 감탄사를 뱉어냈다. 그의 작품이 정말 멋있었을 수도 있고 취기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인상 깊은 것은 그의 작품들 보다도 술에 취해 주절거리는 그의 이야기였다. 핸드폰에 담긴 사진을 쓱쓱 넘기며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그 사진들은 그저 잘 찍힌 하나의 의미 없는 사진이었을 것이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그가 느낀 점. 그때의 분위기, 어떤 냄새에 대해 그는 이야기했다. 나는 술기운에 멍한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머릿속에 그려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장소와 냄새를 떠올렸다. 그곳에 그가 카메라를 들고 기괴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그는 자신의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모른 채 유지하기 힘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근에 찍은 사진들은 이게 다예요."


그는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갔고, 나는 그가 앉아있던 모퉁이에 그와 똑같은 자세로 쭈그려 앉았다. 사진을 찍는 순간의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령, 글을 쓸 때 어떤 한순간을 떠올린다. 그 한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많은 단어를 생각해내며, 그 순간을 더욱 절묘하게 묘사하기 위해 오감이라 불리는 모든 감각을 깨워낸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찰나에 모든 것을 담아내고, 나는 훗날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머릿속으로 되새김질한 글을 써 내려간다는 차이일 것이다.


어쩌다 사진을 찍게 되었냐는 물음에 그는 순간을 담는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 였을까? 그를 만난 이후로 사진을 찍는 자들이 매 순간 아름다워 보였다.

이들이 바라보는 0.01초라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사진이라는 분야는 찰나의 순간을 담아낸다.

그것이 작품에 잘 드러나면 좋은 사진 일 것이다.


그리고 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글을 쓰는 이들은 어쩌면 과거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아닐까?

과거를 떠올리고 지나온 발자취를 다시 복기하며 한 자 한 자 써내려 간다.


사진을 찍는 이들이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면

글쟁이들은 과거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는 글에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담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글에 담고 싶은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긴 손톱으로는 못 살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