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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Yoon May 14. 2021

긴 손톱으로는 못 살겠다.

가짜 손톱이 가져다 준 비극




손톱을 물어뜯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다. 살면서 손톱깎이로 내 손톱을 잘라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어쩌다 새끼손톱이 자라게 되어 치아로 야금야금 뜯어내려고 하면 주변에 있던 가족, 애인이 꼭 한소리하며 손톱깎이를 가져온다.


내가 손톱깎이를 사용하는 경우는 대부분이 '걸렸기' 때문이다. 타인의 손에 들린 반짝거리는 쇠덩이는 180도 기이한 회전을 하고 나서야 집게 형태를 띠며 준비가 되었음을 알린다.


고문을 준비하는 고문관처럼 손톱깎이를 든 이들은 압력을 주며 손톱깎이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을 하며 내게 다가온다. 이쯤 되면 바닥에 앉아 멍하니 반질반질 거리는 손톱깎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조마조마해진다.


나는 아직 고문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소만...


손톱을 깎는다는 건 머리를 감는 것처럼 당연한 행위 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일생에 몇 안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몇 번의 번지점프를 하게 될까?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그 순간에 얼마나 가슴이 쿵쾅거릴까?


내게 손톱을 자르는 일은 번지점프와 같다. 일생에 몇 안 되는 겪어도, 겪지 않아도 되는 경험. 짧은 순간 손톱이 '또각-'하고 잘려나가는 썸뜩한 감각을 느껴야 하는 경험. 번지점프를 하듯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는 경험.


손톱의 길이는 내면의 불안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평온한 일상을 유지할 땐 일정 길이의 짧은 손톱을 유지하고, 스트레스가 달하면 피가 날 정도로 물어뜯곤 한다.


호주에서 생활할 때 공부와 비자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상황이었다. 이제 손 끝에 물만 닿아도 아릴 정도로 내 손톱은 반토막만 달려 있었다.


당시 알고 지내던 분이 내 손을 보더니 안쓰러웠는지 나를 네일숍으로 데려갔다. 패션과 뷰티에 관해 관심도가 제로인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보는 사람이 아파서 못 보고 있겠다며 지인이 시키는 데로 아크릴 네일(가짜 손톱)을 붙였다.


치과에서만 보던 드릴을 손톱을 가는 용도로도 쓴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짧은 손톱이 길어지는 신기한 과정을 지켜보았다.


더불어 네일숍 직원은 손톱 뜯는 버릇이 있다면 주기적으로 와서 젤 네일을 하면 괜찮아진다고, 또 손톱이 예쁘면 보기 좋아서 덜 물어뜯게 될 거라며 격려해주었다.


처음 달아본 가짜 손톱은 나쁘지 않았다. 손톱 짧은 사람을 많이 상대한 네일숍 직원은 고맙게도 짧은 손톱 길이를 추천해주었다. 늘 손톱이 짧은 상태로 살았다면 조금만 길어도 불편하다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나는 그녀가 만들어준 새 손톱이 마음에 들었다. 손톱에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닌, 색을 올리고 손톱을 굽느다고 표현하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손톱을 굽는다.

손톱을 굽는다.


어감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속으로 되뇌었다.








최근 쓸데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었다.


나를 위한 생일 선물로 무엇을 살까? 고민하다가 짧아진 손톱을 보며 오랜만에 손톱을 구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일에 걸맞게 디자인을 넣고 싶어 근처 유명한 네일숍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해 두었다.


바이러스가 터지고 나서 하던 일을 관두었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해 수입원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이 현실이란 벽에 부딪혔다.


다시 내 손톱은 마구 짧아져 가고 있던 참이었다.


네일숍 직원은 내 손톱을 보며 조금 놀란 얼굴을 해 보았다. 이해해요. 너무 짧아서 작업하기 힘들겠죠? 그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 내 짧은 손톱 위에 가짜 손톱을 얹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손톱 연장과 모양을 내는데 더 시간을 투자한 그녀였다.


그녀는 연장비를 냈는데 짧은 손톱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적당히 긴 손톱을 해보는 것을 추천했다.

나는 그러자고 했다.


지금 하고나면 내가 또 언제 손톱을 하러 오겠는가 싶어 그녀가 하고 싶은데로 하게 놔두었다.




내 생에 처음으로 가장 긴 손톱이었고,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은 손톱이었다.


그리고 나는 핸드폰을 만질 수 없는, 키보드를 칠 수 없는 손 병신이 되어버렸다.


손 병신이 되어서, 귀를 후빌 수도 없었고, 얼굴이 가렵다고 마구 긁을 수도 없었으며, 시원하게 맥주 캔을 열어서 맥주를 마시지도 못했다. 전자레인지의 문을 열 수도 없었고, 얼굴에 바르는 크림보다 손톱에 낀 크림이 더 많았으며, 헬스장에서 덤벨을 쥘 수 없는 말 그대로 손 병신이 되고 만 것이었다.


나는 다시 네일숍에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손톱 길이를 줄여야겠습니다.


이 단단한 손톱을 자를 정도의 손톱깎이는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앞에 앉아 그녀가 서랍장에서 꺼내 드는 기구들을 보았다. 그녀는 펜촉을 바꾸듯 드릴의 종류를 바꾸더니 내 손톱을 갈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얼어있던 내 표정이 풀리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챈 그녀도 손톱이 길어서 많이 불편했냐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제야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녀에게 그간에 있었던 나의 고충을 이야기했다.


"손톱이 기니까 문자를 못 보내겠던데?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문자를 보내는 거야?"


나는 그녀의 긴 손톱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손을 비스듬히 틀고 검지 손가락의 옆면으로 문자를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내면 되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가 활짝 웃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짧게 갈아달라고 부탁했고, 긴 손톱을 추구하는 그녀는 여전히 내 손톱을 그녀의 기준에서 짧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제 겨우겨우 문자를 쓰고 키보드를 두드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키보드 위로 손톱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타협음과 수많은 삑사리들 때문에 몇 번을 오타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짧게.... 더 짧게 갈아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나는 정말이지 긴 손톱으로는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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