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아야 했던 것인지,
베풀어야 했던 것인지.

2월 18일. Day 26 in 후쿠오카

by 사진 찍는 미미

오늘의 일정

* 건담


오늘은, 일본이라 시차가 없다고 해도 긴 여행이었으니 귀국 전에 여기서 피로를 좀 풀고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앞으로 두 어번 시외로 또 가야 하니 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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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소위 평점 좋은 음식점들이 꽤 있다.

내가 유명 음식점들도 검색했다고 하면 거기를 가 보라고 성화할 테지만 어차피 안 가기로 맘먹었으니 말 안 하기로 했다.

남은 날을 음식점 순례를 하기는 싫었고 하카타 역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 가면 아주 커다란 로봇과 쇼핑몰이 있다니 거기나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라포트 후쿠오카 건담 파크! 우왕 이런 곳이? 아주 큰 로봇이 있는 곳에 마침 토요일이라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와 있었다. 그 옆에 쇼핑센터에 들어갔다.

복합센터인데 음식점, 빵집, 의류 판매점, 영화관, 작은 축구장, 잡화점 등등 규모나 환경이 참 널찍널찍 쾌적하고 편안하게 되어있다.

12시 정시에 로봇이 움직인다고 하니 밖으로 나가 영상에 담아 본 후 다시 그 로봇 모형을 파는 곳으로 갔다.

막내딸이 임신 중인데 아이가 사내아이라니 하나 사 볼 요량이었다.

무슨 공항 입국심사 줄처럼 해 놓은 매장에 들어가 보니 내가 생각한 상품은 없고, 사다가 조립하는 박스 상품과 책상 등에 진열해 놓을 수 있는 것 밖에 없다. 재미로 유모차등에 대롱 매달고 다닐 수 있는 게 있나 했는 데 마땅한 게 없어서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 로봇을 사주리라 생각하고 그냥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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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신기록을 세웠다는 코로케와 명란 바케트 빵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예쁜 카드에 이번여행을 응원하며 큰 액수의 격려금을 주신 분께 드릴 귀국 선물을 사려고 세 번이나 들러 살펴보았던 작은 카메라 가방을 사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시장하기도 하였지만 등에 맨 배낭에서 고로케 냄새가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2시 30분경. 손만 씻고 우선 고로케를 맛본다. 고기가 들어있는 카레 고로케다.

맛있다. 예전부터 난 고로케를 좋아했었다.ㅎㅎ

다음엔 명란 바케트이다. 명란을 바케트에 넣었다니..

약간 짠 듯. 매운맛도 있고 비린내도 없고 맛이 있었다. 두 어개 더 사 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잠시 되었다.

그리고 흐리고 비까지 뿌리던 오늘의 외출과 빵을 두 개나 배부르게 먹고 난방을 틀고 침대에 쿠션에 기대어 앉은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 데, 티비소리가 넘 크게 들려 눈을 떠 보니 5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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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진이 났어도 몰랐을 정도로 오수를 즐겼나 보다.ㅎㅎ

정신 차리면서 창밖을 보니 저 멀리 건물에 전구로 장식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사실 저녁에 창밖을 내다보면 계속 보였었다.

저것은 무슨 불빛일까? 어떤 건물에 저런 장식을 해 놓은 걸까? 궁금했었다.

지난번 지하철에서 오다 보니 공원이 있다는 푯말이 있던데 공원을 꾸며 놓았나 생각했던 곳, 내가 다니던 곳의 정 반대 방향,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곳이다.


갑자기 저기나 가 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물먹은 솜처럼 늘어져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몸을 바람처럼 일으켜 양말을 신고, 바지만 갈아입으면 되니까, 중얼중얼거리며 옷을 입었다. 모르는 길이고 벌써 저녁 무렵이라 어둑어둑해졌고 비도 제법 오는 데.. 우비도 안 입고 호텔로비에 있는 우산을 쓰고 (사진은 안 찍겠다는 은연중의 의지) 길을 나섰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후드득후드득 비 소리가 제법 낭만적인데 하면서 불빛방향으로 대강 짐작으로 걷다가, 못 찾거나 보이는 것보다 멀면 얼른 큰길로 나가서 빙 돌더라도 꼭 가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길을 건너 골목을 지나 얼마 안 가 반짝거리는 전구의 실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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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아울렛 쇼핑몰이었다.

반짝이는 것은 나뭇가지에 동물 모형에 전구를 달아 놓은 것이었고 이렇게 가까이에 이런 쇼핑센터가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더군다나 8~9시까지 영업을 하기 때문에 가게마다 다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주차장이 큰 것을 보니 손님이 많은 곳인 모양이었다.

슈퍼마켓도 들어가 보니 내가 그동안 다니던데 보다 2배는 더 큰 곳이었다.

뭐지??????

나의 단골 슈퍼는 큰 빌딩 지하에 지하철과 연결된 슈퍼마켓만 있는 곳이었다,

숙소에서 10여분 걸어가야 하는.. 그래도 여기가 있어서 다행이다, 좋다 하면서 다녔는데. 빨리 걸으면 5분도 안 걸리는 곳에 이런 슈퍼마켓이 있다니.. 그것을 귀국하기 5일 전에 알게 되다니..

내일은 여기를 와 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다가 딸기, 토마토를 사 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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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계단을 올라오는 데 한국인들인 듯한 남학생 2명이 서서 들어가질 못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니 역시나 안녕하세요 하며 반가워했다. 현관번호는 내가 눌러줄게요 하며 내가 들어오자 그 학생들이 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다가

방 번호는 알고 있지요? 방 앞에서 키 박스여는 게 어려웠어요 했더니 방 번호라는 거 모른 단다.

에고.. 메일로 왔으니까 확인해 보라고 하면서 보니 그 학생들 트렁크는 비에 잔뜩 젖어 있고 딱해 보여서 함께 로비에 있어주었다.

메일, 스팸메일까지 뒤져도 없다. 국제 전화로 관리자에게 해야 하나? 그럴 리가 없는 데 어딘가에 있는 데 그 학생들이 못 찾는 게 틀림없었지만 나도 방법을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나 몰라라 들어가기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니 이젠 오도 가도 못하고 잡혀 있게 되었다.


우리 셋은 계속 메일을 찾고 문자 보내기를 시도하고, 난 남편에게 사정을 말한 뒤 어떤 식으로 메일이 왔는지 확인했다. 남편은 자세히 알려준 다음 여기 관리인 전화번호를 말해 주었다.

정 안되면 국제전화라도 해 보겠지만 이 학생들 말이 주말요금이라 평소의 3~4배나 되는 요금을 주고 이 호텔을 예약을 했다고 하니, 좀 더 메일을 뒤져보기로 했다. 그러기를 1시간 정도 더 흐른 것 같다. 슬슬 최종으로 국제전화를 해야 하나 할 즈음 일본인 남녀 커플이 밖에서 못 들어오고 있다. 내가 열어줘도 안 들어온다. 우리가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놀란 모양이었다.

다시 열어주면서 오늘 여기서 머무를 것인가 물었더니 그렇단다.

방 번호를 아냐고 물었더니 모른단다. 잘됐다 싶어서 관리인한테 전화해서 알고 난 후에 우리 것도 물어보게 전화를 바꿔줄 수 있냐고 했더니 전화번호를 모른단다. 남편이 알려준 번호를 알려주었고 그 사람은 자기 방번호를 알고 난 다음 우리를 바꿔주었다.

내가 관리인에게 방 번호를 못 찾아서 1시간가량 못 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더니 신분 확인을 한 후에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 학생들이 나보고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다행이었다고,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주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말의 속도에 나도 놀랐다. 한 달 살이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전화를 바꿔준 일본인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학생들에게 내 방 호수를 말해주고 방 여는 키박스 잘 못하겠으면 찾아오라고 했다.

방에 들어와서 남편에게 해결되었다고 영상통화로 알려주는 데 띵똥 한다.

학생들이 저녁 먹으러 나간다 하면서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 학생들 내가 방 번호를 안 알려줬으면 꼼짝없이 밖에 못 나갈 뻔했던 게 아니었을까?

맛있게 먹고 오라고, 여행 잘하고 가시라고 감사하다고 서로 인사했다.

우리 셋은 기념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좋은 일 했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내가 왜 하필 오늘 그 건물 불빛을 보고 부랴부랴 나갔는지, 나가지 않았다면 그 학생들을 못 만났을 텐데..

그 학생들을 도와줘야 할 인연이었나 보다.

내가 갚아야 했던 것인 지, 베풀어야 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왜 갑자기 나가고 싶어 졌는지 풀리지 않을 나의 외출과 그 학생들의 만남이었다.

‘어떤 행동(일은)은 어떤 결과가 있으려고 일어나는 가 보다’.

우연이었을 까?

일어날 일이었을 까?

여하튼 난 오늘 사람을 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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