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7일. Day 25 in 후쿠오카
* 나카스강 포장마차 거리
어제 넘 일찍 잤는지 새벽 5시에 기상했다.
남편이 내가 사놓고 온 시판 추어탕에 계란을 넣고 같이 끓여서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집안 청소며 빨래 널기 등 다른 건 아주 열심히 잘 도와주는 남편이지만 가스불 하고는 많이 안 친한 사람인데 (라면 끓여보려고 두어 번 켜봤을 까) 이번 최장기 별거가 준 생존질문이었다.
내가 은연중 바라던 바로 그거였다.
혼자 해보는 겁니다. 홧팅
창의력과 응용력과 실천해 보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런데 어쩐지 이 말은 나한테 하는 말인 것 같기도 했다. 여태까지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잘 지내다 만나자구요~~
물 한잔 마시고 나니, 꼭 계란과 추어탕이 때문이 아니라 나한테 무슨 어떤 말이 라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 까? 곁에 없음이 실감이 나서 보고 싶다는 말 대신 한 말이 아니었을 까?
내 짐작이 맞을 것 같다고 치고, 뭉클하기로 했다.
가족방에 굿모닝 하고 여유롭게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나카쓰 밤 포장마차 구경을 하려고 한다. 귀국 전 오늘밖에 주말이 없기 때문이다.
*나카쓰라는 곳에 밤이면 포장마차가 생기는 데 나는 음주 가무에 젬병이지만 주말에 사람이 많으니 사진촬영엔 좋을 것 같아서였다.*
점심 무렵에 나와서 야요이켄에 가서 함박스테이크 외식하고, (역시 외식은 과식이다) 나카스에 와서 아이들 선물사고, 스타벅스에 갔다.
밀린 일기 정리하고 있다가 나카쓰 포장마차 구경도 하고 촬영도 하고 들어갈 예정이었다.
내가 외국인 줄 알고 스타벅스 알바생은 허브차 종류를 꺼내놓고 설명을 하고 컵도 미리 진열되어 있는 4종류를 가리키며 고르라고 했다. fuk커피점을 갔을 때와 동네 카페에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대응이었다. 브랜드 매장이라서 그런건지, 아님 그 매장만 그런건지, 그 직원만 그런건지 알 수는 없으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화장실을 물어볼 때도 물 한잔 부탁할 때도 일부러 찾아서 물어봤기에 그 직원은 나 때문에 일이 많아졌을지 모르나 내가 친절과 선함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진심으로 전했으니, 고단함 해소에 좀 도움이 되었지 않았을까?
6시가 좀 못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걸어도 되는 거리에 이렇게 예쁜 야경이 있었는 데, 저녁만 되면 집에 꼭꼭 있었다니.. 웃음이 나왔지만.. 그것도 괜찮다. 괜찮다. 스스로 위로했다. 오늘 많이 보면 되지…
작은 공연도 있었다.
셔터를 몇 번 눌렀지만 좋은 장면을 만나려는 욕심보다는 그 장면을 보고 즐기고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에 젖어 보고 싶은 맘이 더 컸다.
강변을 왔다 갔다 두 어번 했는 모양인데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 예보에 비옷을 챙겨가긴 했지만 타국에서 맞는 비는 재미보다는 곤란함이 더 크다.
손을 뻗어 양을 가늠한 후에 길가에 서서 우비를 입었다.
우비는 비도 막아주지만 추위도 막아주고 바람 부는 날에도 아주 유용하다.
또 발바닥에 모터를 단 듯 서둘러 걸었다.
그래도 미루고 미루던 나카스 야경 촬영을 하게 되어 다행이었다.
숙소에 돌아오니 어디 시외를 다녀온 것도 아닌 데 피로가 몰려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한쪽 양말을 벗으려고 하는데 침대가 몹시 흔들린다. 첨엔 내가 어지러운 건 가 했다.
약간 현기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침대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눈에 확실히 보일 정도로 나도 모르게 침대에게 말을 건넸다.
너 왜 그러니?
순간 지진이다 느끼고 가족방에 지진인 것 같다고 지진이 났다고 알렸다.
그때가 7시 37분이었다.
가족은 안내방송이 나오나 티비 뉴스를 보라고 호텔 앞 학교운동장으로 여권과 지갑을 들고나가라고, 여진이 있냐고 걱정들이었다.
밖을 내다보니 조용했다.
별 일 아닌 가 하고 있는 데 영사관에서 단체 문자가 왔다 후쿠오카에 지진이 났으니 피해를 알려달라는.. 4.3 지진이라고 했다.
그때 큰 딸아이가 한국 포털에도 떴다고 어쩌면 좋으냐고 했다.
남편은 일단 10시까지 씻지도 말고 옷을 다 입은 다음 여권을 챙기고 언제든 밖으로 피할 수 있게 대기하라면서 호텔이 큰 건물이라 안전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나를 안심시키지만 정작 본인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난 창문 커튼을 열어 밖을 볼 수 있게 하고 때때로 내다봤다. 아무 일 없다. 가족들은 계속 안부를 물어왔다.
갑자기 경찰차 소리가 요란하다. 밖을 내다보니 무려 3대나 학교 앞에 차례로 와 정차했다.
어머나 이제 나가야 하나 봐 지진 때문에 경보를 울리며 다니는 건가? 하는데 경찰들이 내려서 지나가는 5~6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한 대의 경찰차가 요란스럽게 왔다.
한 참을 그러고 있더니 피난 경보 같은 게 없이 그냥 갔다.
결국엔 지진도 경험해 봤다. 만약 급히 피해야 하는 지진이었다면? 난 여권과 지갑 그리고 무엇을 더 챙겼을까? 아니, 위험한 상황이었다면 가족들한테 무슨 말을 했을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선, 여권과 지갑, 그리고 그동안 촬영한 SD카드를 챙겼을 것 같다. 그다음 질문들에 대한 답은 생각나는 게 있지만 입 밖으로 못 내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급조된 답이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에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낮에 나카스에 갈 때 공동묘지가 있길래 들어가 보았었는 데…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의 차이는 ‘함께’와 ‘혼자’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났다.
지진 소동은 끝났지만, 혹시나 가슴 졸여 걱정하며 허둥대는 가족이 있고
오드리 햅번 사진을 보내주면서 그녀의 사진을 보니 내가 생각났다는 친구가 있으니 고마운 거 아닌 가?
여하튼 10시까지 있다가 잤다.
10006보 걸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