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Day 24 in 후쿠오카
* 후쿠오카 구치소(구, 형무소)
* 모모치 해변
* 후쿠오카 박물관
* 세이난가쿠인 대학교
* 하코자키궁
* 텐진 버스터미널에서 하우스 텐 보스표 미리 삼
오늘은 예정된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정 심심하면 호텔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에 있는 신사를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나라 포털에 어떤 기자가 코로나가 풀리니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은 데 그중에 후쿠오카로 가는 사람이 많다. 가서 먹고 남의 나라 신사나 가고.. 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여행객들을 나무라는 듯한 기사를 쓰면서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임을 당한 날이니, 찾아 가 봄이 어떠냐는 기사를 읽었다. 해마다 일본 사람들이 윤동주 시 낭송회도 한다는 소식도 있었다.
(기사를 읽고 검색해 보니 사촌인 송몽규도 윤동주시인과 같은 죄목으로(치안유지법) 함께 투옥되고 윤동주시인과 20여 일 간격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올해는 어디에서 몇 시에 하느냐고 난생처음 기사에 답글도 달았지만 답은 없었다.
여행 온 사람들도 나름 다 이유가 있을 터인데 야단만 치지 말고 자세히 가르쳐 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메일 주소까지 남겼지만 답이 없어서 다시 검색해 보니 코로나 전까지는 2월 16일에 시 낭송회가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모모치 해변에서 시 낭송회가 있었다는 기사도 있었다.
한국에서 지하철 타는 법을 노선표를 보고 미리 알아 온 것은 K9역에서 갈아타는 거였는 데 우리나라처럼 지하철 앞에 쓰여 있는 종점역을 보니 이 지하철은 안 갈아타도 후쿠오카 구치소 가는 역까지 가는 것 같았다. 옆에 앉은 여학생한테 확인을 하니 맞다고 했다.
역시 한 달 정도는 살아야 눈이 떠지고 요령이 생기는 모양이다.
내가 한국인이라 하니 그 여학생이 활짝 웃으며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수줍은 듯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한다. 용기를 내서 말했을 것 같다. 한국인에게 한국말로 인사! 나도 일본에서 얼마나 용기를 내고 있는지…
형무소!!!
찾기는 쉬웠다
하늘은 파랬다.
구치소와 주택가! 주택가에 구치소가 있는 건지 구치소 옆이 주택가 인지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인데 한 곳에 있었다.
하지만 주택가 담장 안의 귤인지… 내 주먹만 한 노란 과일이 담장색과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형무소였는 데 구치소로 변했다지만 선입견 때문인지 그리고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며 가서 그런 지 발걸음이 무거웠다. 가까이 가니 정문 앞에 두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순간 눈이 마주쳐 무슨 일이냐고 하면 무엇 때문에 왔다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윤동주 시인 때문에 왔는지 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을 다시 쳐다보았지만 입은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정말 후회되는 일이었다. 그냥 물어볼걸 왜 머뭇거리다가 말았을까?)
구치소라 촬영이 안될 테니 카메라 사진은 냅두고 휴대폰으로 두어 장 찍었다.
정문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묵념을 하고 휴대폰으로 찾아낸 서시를 낭독했다. 이렇게 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에서 시 낭송회를 한다는 안내도 없었다. ‘몇 시에 어디에서’라고 안내장이라도 붙어 있기를 바라며 열심히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휴~~~~~한숨이 저절로 나왔지만, 그래 무작정 온 거니까…
걸어서 25분 걸린다는 모모치 해변으로 가면 혹시 마술처럼 시 낭송회가 있으려나?
걷지 뭐 하며 지도를 따라 30걸음도 안 걸어 골목길을 나왔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멋진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나온다.
밖은 예전에도 이랬을 텐데, 안타까움이 시퍼렇다. 시인은 어둡고 불결한 감옥에서 나라생각만 하다가 고통 속에 돌아가셨으리라..
아주아주 천천히 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 작은 손녀딸 또래의 아가들이 선생님들과 산책하고 있었다.
어두운 맘은 잠시 접고 할머니의 맘으로 아가들에게 활짝 웃으면서 빠이빠이를 했다.
선생님들도 아가들도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래 너희들이 미래다. 잘 자라서 선하게, 지혜롭게, 모든 사람들과 자연이 함께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어라.
혹시 잘못하게 되었거든 얼른 사과하고, 상대방이 잘한 게 있거든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축하해 주면서 세상을 이롭게 해라. 부디 너희들이 사는 세상에는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기를…
모모치 해변에서도 시 낭송회 흔적은 보지 못했다.
여행초기에 왔었던 모모치 해변, 그때는 앞에만 보고 갔는 데 오늘은 뒤쪽으로 도착해서 다시 한번 보니 그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다.
퍼렇게 멍들어 가던 안타까움을 바다에 흘려보냈다. 상처는 아물겠지만 자국은 남을지도 모르겠다. 바다 끝 하늘과 맞닿는 곳에 시선을 멈추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홀로 낭송했다.
나는 여행객이라 떠나야 하니 맘 추스르고 길을 나설 수밖에.
근처에 있는 후쿠오카 박물관으로 갔다.
두 번째 오는 길이라 어플 도움 없이 걸었는데 걷는 도중에 지난번 보지 못했던 광경을 만났다. 서양식 빨간 벽돌 건물이고 마치 유럽처럼 사람들이 밖에 앉아 친구들과, 아가와 엄마가 식사를 하고 웃고.. 그동안에는 보기 힘들었던 여유롭고 평화로운 장면이었다.
대학교 안의 건물에 있는 식당이었다.
전 세계에 이 따스한 평화가 퍼지기를!
지하철을 타고 20, 21일에 갈 곳의 버스표를 미리 사려고 텐진역으로 갔다.
텐진 버스 예매하는 곳도 잘 찾아가서 예매를 하려니, 내가 원하는 산큐 패스는 한국에서 사 왔어야 했단다.
하우스텐 보스는 교통비만 4만원이 넘었다. 오래전에 다녀온 적이 있으니 가지 말까?.. 테마파크에 혼자서 무슨 재미가 있을까? 좀 망설이다가 그래도 언제 또 오겠어하는 마음에 예매하기로 했다.
난 직원하고 말이 잘 통한다고 생각하는 데 그 직원이 날 못 믿겠나 보다. 내가 아무렇게나 대답하는 거 같아 염려스러운지 갑자기 어디다 전화하더니 날 바꿔준다
한국말하는 일본인이다. ㅎㅎ
이토시마 가는 시간도 알아봐 달라고 하니 아이패드를 아예 보여준다 올 때 갈 때 시간표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고맙고 친절했다. 앞으로 일정에 도움이 되는 두 가지를 해결하고 지하철을 타고 하코자키궁으로 갔다.
아주 큰 신사였다.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눈을 감았다
여기, 지금을 감사하며 함께 하는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이곳은 호텔과 지하철 역 상으로는 두 정거장밖에 안 떨어져 있어서
그동안 걸었던 거 생각하면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걸었는 데 완전 땡볕을 그대로 받으며 아주 먼 길을 걸었다.
그래도 4시 전에 도착해서 환기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고..
밥도 많이 먹었다. 내일은 쉬기로 했으니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얼마나 좋아!
반겨줄 가족이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 돌아갈 내 나라가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는 요즘이다.
내일은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17423보 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