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배려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2월 21 & 22일. Day 29 & 30 in 후쿠오카

by 사진 찍는 미미

2/21 일정

* 동네 한 바퀴


점심을 먹고 동네 공원에 잠시 외출하려고 나가보니 추웠다. 다시 들어와 점퍼와 티셔츠를 껴 입고 나갔다.

한 30미터쯤 갔는 데 비가 내린다. 바람도 불었다. 예상치 못한 날씨의 변화였다.

무시하기엔 강한 비에 바람이 세다. 다시 돌아왔다.

호텔 로비에 있는 우산 중 젤 큰걸 집어 들고나갔다.

카메라를 목에 걸었긴 했지만 우산을 썼으니, 촬영은 불가능하고 산책이나 하지 뭐 하며

계단을 내려가 길에 내려서서 우산을 폈더니 우산 살 하나가 부러져 있다.

겉모양만 보고 큰걸 골랐더니..

뭐 이래? 잠깐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전부 ‘별로’ 다.

그리고 그게 뭐 그렇게 내 감정을 상하게 만들 일도 불편할 일도 아닌 것이 따져보면, 확인 안 한 내 탓인걸.

그렇다 해도 불쾌하긴 했다.


처음 여기 온 날 지하철 역에서 내려 그 많고 좁고 가파른 계단을 휘청거리며 올라왔던 생각이 났다.

귀국길에 그걸 겪는다는 건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어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다음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더라도 엘리베이터가 있는 지하철 역으로 가리라 맘먹었었다. 이 지하철 역은 둘러보아도 엘리베이터표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애인과 어르신들을 위해 이 역에도 틀림없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역무원 할아버지한테 여쭤보니 당장 거기로 가겠다는 말 인 줄 알고 날 데리고 가서 친절하게 알려주려다가 지금 가는 게 아니라고 했더니 8번 출구로 가면 있다고 하셨었다.

어플을 보고 미리 알아 둘 겸 어차피 나온 거 살이 하나 부러진 우산이지만 쓰고 거기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가지 않아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곳을 확인을 하고 앗싸! 미리 알아본 걸 자축하며 우울했던 기분을 잠시 가라앉혔다.


그리고 공원으로 걸어가는데,

잠시 후 비가 그치니 그 커다란 우산은 이내 필요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호텔 물건이니 버리지도 못하고 배낭 한쪽 끝 줄에 매달고 걷는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었다.

배낭에 겨우 걸고 신경 거슬려하면서 버리지도 못하고 귀하게 가지고 다니지도 못하는 우산을 보면서

사람이나 물건이나, 남을 불편하게 하거나 거추장스러워진다는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기에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걷는 내내 들었다. 동시에 한번 맺은 인연은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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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돌고 들어와 대강 짐 정리를 했다. 가는 날이 가까우니 시간이 아까워, 저녁 무렵 나카스에 가서 강변도 걷고 밤 사진 좀 찍을 까 하고 생각했으나, 안 나갈 이유와 핑계를 찾기에 바쁘다. 오늘은 추워서 안 되겠다.


6천4,5백 몇 걸음



2/22 일정

* 이토시마-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와 그 주변


이토시마의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는 '일본의 바닷가 100선', '일본의 석양 100선'에도 선정된 절경 포인트. 모래사장에 있는 도리이와 금줄로 연결되어 부부처럼 나란히 서 있는 2개의 거암(메오토이와)을 볼 수 있습니다. 석양의 후쿠오카현 지쿠젠 후타미가우라로 유명하며, 해안에서 약 150m의 앞바다에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인연 맺기와 부부 원만의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날씨 때문에 어제와 일정이 바뀌어 오늘 이토시마를 갔다.

하카타 버스터미널의 3층 32번 승강장에서 타면 된다. 버스표는 미리 살 필요가 없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요금을 내면 되었다.

우리나라처럼 내릴 역에서 버튼을 누르면 되고 그런데 천천히 나와도 내리는 사람도 기사분도 앉아있는 승객도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바로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에 갈게 아니라서 한두 정거장 전부터 그 주변이 예쁘다는 정보에 따라 지한군에서 미리 내렸다.


그야말로 날씨가 최고였다.

더군다나 야자수도 있는 푸른 바닷가다.

야호 소리가 절로 난다.

차를 개조해서 만든 작지만 오밀조밀 화려한 색과 소품으로 한껏 꾸민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기분 좋을 때 하는 나에게 하는 선물이다. 촬영하느라 손이 새카맣게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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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파도소리가 어우러져서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사랑하는, 함께 하고픈 사람들의 생각에 행복과 외로움과 함께

천천히 바닷가를 거닐었다. 모래라 힘이 들긴 하지만 잘 정돈된 길이 아닐지라도 모래사장을 택해 걸었다.

파도소리와 바다 색과 주변의 야자수와 번잡하지 않은 카페건물들이 잘 어울리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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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신 부부, 부모님을 모시고 온 젊은이들, 앞으로의 인연에 대해 기원하는 이들..

사진도 찍어주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하면서

그들의 웃음소리도 말하는 소리도, 서로 혹은 함께 사진 찍는 모습도 모두 좋다. 잘 어울렸다.

저 바위를 바라보며 그들이 기원하는 게 이루지기를 바라면서 우리 부부와 그동안의 수많은 인연과 앞으로의 인연에 행운을 빌었다.

한 달 동안의 특별한 휴가를 이렇듯 행복하게 끝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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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정거장이 맞는지 확인하는 데 이번 버스를 아니고 다음 버스를 타라고 친절하게 일러준 일본 대학생들, 시간에 맞춰 버스가 왔으나 버스정거장에 있다가 엉뚱한 곳에 서 있느라 줄을 놓치고 있던 나에게 자기들보다 먼저 온 걸 알고 있던 줄의 맨 앞의 아가씨들이 나에게 먼저 타라고 권했다. 사소한 배려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오는 내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데 몸에 긴장감은 하나도 없어지고 생각도 없어지고 지나치는 풍경만 무심히 봤다.

그 순간이 좋았다.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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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저녁은 푸짐하게 스시를 먹기로 했으니, 마지막 장보기는 훨씬 크고 좋아 보였던 새로 알게 된 마트보다는 나의 단골 써니마트로 가기로 결정했다.

길 건너에는 쉬는 날마다 가던 벨로체 카페가 있다.

거기도 들러 커피 한잔하고 싶지만 잠이 안 올까 걱정이라니까 남편이 마지막 밤인데 잠 좀 못 자면 어떠냐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노트북 없이 정말 커피만 마시러 갔다.

내가 자주 앉던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 창가 쪽에 앉았는 데, 할머니 한 분이 바깥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셨다. 사진으로 잘 담아보고 싶었지만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아!!! 어르신께서 내뿜는 연기와 그 깊은 숨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차분해졌고, 의자에 더 편안히 앉으니 지난 일들이 두서없이 떠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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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들러 회가 들어있는 김밥과 스시, 맛보고 싶었던 교자까지 샀다.

먹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많이 걸으면서 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먹는 거 많이 자제하려고 했었는데, 마지막 날이니 주섬주섬 많이 담았다.

이번 여행에는 기념품도 없다.

문득 거울을 보니, 머리를 염색할 때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내니 집으로 갈 때가 된 것이다.


역시 남편에게 젤 감사한다.

기회를 줬고 용기를 줬다. 할 수 있게 해 줬다. 그 이상이 뭐 있겠는가! 그거면 최상의 최고의 선물인 것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경험한 것이 또 있다.

살아가는 데 기준을 어디다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그렇게 많은 물건과 옷 따위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내일 귀국이니, 냉장고 정리를 해서 이따 저녁에 먹을 것과 내일 아침에 간단히 요기할 거를 챙겼다.

식빵 두 조각은 아깝게 버렸지만, 거의 딱 맞게 먹은 셈이다.

청소하시는 분이 의심하지 않고 드시면 좋겠다는 맘으로 라면 두 개는 잘 보이는 곳에 남겨놓았다.

내일 새벽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못 만날 호텔관리자에게 오랜만에 손글씨 일본어로 잘 쉬었다가 간다고 건강하라고 메모를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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