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분의 어머니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세 어머니가 계신다.
한분은 나를 낳아주신 분이다.
부모 형제를 이북에 두고 남편을 따라 이남으로 내려와서 살아내야 하는 힘듦과 만날 수 없는 부모님과 형제, 고향 친구들.. 갈 수 없는 그곳을 향한 그리움이야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크셨을 텐데..
당신이 생전에 말씀하신 대로 소설책으로 쓰면 열 권도 모자랄 인생을 살아오신 나의 엄마. 자식들이 여럿 있으나 기쁨보다는 늘 걱정이 많았던, 억척스럽게 사셨지만 정도 많았던 나의 엄마. 편안함 보다는 고단함이 더 많아 마치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인내하고 견디며 사셨다.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참 가여운 엄마이다. '엄마'라는 말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죄송하기 짝이 없다.
시고모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언제나 엉덩이 통통 두들겨주며 사랑해 주시던 아버님께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후 충격 탓인지 병을 얻어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며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예쁜 얼굴, 고운 마음씨의 어머니께 배운 것이 참 많다.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 주시곤 내가 담그려고 하면 식탁의자에 앉으셔서 버무릴 때마다 간을 봐주시고, 나중엔 나의 요리가 젤 맛있다고 좋아라 하셨다. 혼자 걷기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으실 때도 내가 보조를 젤 잘 맞춘다며 꼭 내 팔을 잡고 걸으셨다. 어머니가 부르시는 나의 호칭은 언제나 내 이름이었다. 그게 참 좋았다.
어찌 다 글로 쓸 수가 있을까?
그 두 어머니가 만난 횟수가 얼마 되지 않으나 엄마가 오시면 일단 편찮으신 어머니가 가엾다고 두 분이 껴안고 우셨다. 엄마의 마음을 아시는지 친언니 품에 안기듯 우시는 어머니.-두 분이 딱 10년 차이가 난다-
엄마는 귀가 어두우셨고, 어머니는 병환으로 말씀을 잘 못하셨다. 한바탕 폭풍 같은 울음바다 끝에 귀가 어둡고, 말씀이 힘드신 두 분이 마주 보며 한참을 대화하셨다. 아주 잘 통했다.
대화 끝에는 엄마는 어머니의 요강을 들고 나와 닦으셨다.
부엌으로 가서 때가 찌든 냄비를 닦으시고 시커먼 흰 양말을 깨끗이 빨아 주셨다.
그리고 나한테는 어머님께 잘해 드리라 하고 어머님께는 잡숫고 싶은 거 있음 다 해달라고 해서 잘 드셔야 한다고 했다.
딸이 차리는 밥상을 한 번도 안 드시고 그냥 가셨다.
그 마음이 이젠 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단 한번 힘드냐 묻지 않았던 엄마, 오히려 잘해드리라고만 했던 엄마의 마음을.
대학교 제자를 첫 대녀로 삼고, 오랜 시간 기도를 해주시는 대모님.
마침 나의 친정 부모님과 고향도 같은 이북내기시다. 눈물도 많고 정도 많고 물론 교수님으로도 대단하셨다.
내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주신 대모할머니시다.
이제 세분 중 대모님만 계시지만 곁에서 살뜰히 챙겨드리지 못하니, 그 또한 죄송스럽다.
세 분의 어머니의 일생을 달랐다.
살아오신 방법도 환경도...
하지만 그분들은 나의 엄마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계신다.
나는 세분의 어머니에게 딸, 며느리, 대녀라는 각기 다른 이름의 자식이다.
제대로 노릇을 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다. 부족했다'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잘 해내지 못할 거고 , 자신도 없다.
후회하는 마음이 크지만 좋았던 것만 기억해야겠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말하며
그냥 슬픈 미소를 지으며 그리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