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의 도장
어머니는 모습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아주 고우셨다.
어머니는 지물포를 하셨다. 나와 남편과 결혼할 즈음까지 하셨으니, 나는 가게에 계신 모습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다음은 남편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어머님의 지물포는 동네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단다. 그 근방의 가게를 하시는 분들이 틈만 나면 번갈아 들르시던 곳. 친할머니와 고모들 집과 가게도 가까이 있었다니 가게에는 손님들도 왔겠지만 한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도배일을 하시던 아저씨 두 분이 계셨는 데 돈을 따지던 공 씨 아저씨, 연세가 있으시던 장 씨 아저씨는 약주를 좋아하셔서 버는 돈을 전부 약주를 드시나? 라고 생각한 적도 있단다. 남편은 가게의 짐 자전거를 타고 싶어 자주 들렀고, 가끔 자기한테 가게를 맡기면 아무렇게나 팔았다고 했다.
어느 해 장마폭우에 동네가 물난리가 났는 데 조금 윗지대에 있던 자기 집은 잠기지 않았지만, 낮은 지대에 있던 지물포에 가서 물건들을 옮기느라 애썼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나와의 연애시절에도 장마가 났었는 데 어머님께서 "혹시 너희 집에 피해가 나거든 우리집으로 와 있어" 라시며 물난리 때의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도 난다.
병이 나셔서 그 오랫동안 하시던 지물포를 접으셨다. 몸이 아픈 이유로 그만두는 것도, 이웃분들과 헤어짐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 까?
사진은 어머님이 쓰시던 도장이다. 아래 빨간 도장은 부러져서 테이프로 붙여져 있다.
저 도장을 서류에 찍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생활하셨을 때를 상상해 본다.
예쁜 얼굴에 활짝 웃는 모습까지.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었을거다.
"어머니!
어머니한테 말씀 안 드린 게 하나 있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빠뜨린 이야기요
저하고 아범하고 혼인 이야기 왔다 갔다 할 때 저의 엄마와 올케가 지물포에 갔었대요.
손님으로 가서 어떻게 대하는 지 알고 싶었는 데, 결혼이 성사되면 얼굴을 알아볼까 가게에 들어가진 않았고요,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어머니 모습을 봤나 봐요.
그때 어머님은 짜장면을 잡숫고 있었대요.
이 이야기, 저도 결혼 후에 들었답니다."
어머니 두 분이 만났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