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과 관련된 이야기

by 이상찬

헌혈도 중독이 될 수 있나보다. 인터넷에서 얼핏 보긴 했지만 내가 그 표본대상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야릇하다. 전혈을 한 번 하고 나서 그다음 전혈을 하기 위해서는 2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나는 4번 연속해서 2개월마다 꼬박꼬박 헌혈의 집에 방문했었다. 사실 자주 간다고는 어렴풋이 느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번 주 일요일에 들었던 헌혈 상담사 말을 계기로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번까지 합하면 총 14번의 헌혈을 하셨네요. 최근에 연달아서 계속 헌혈을 해주고 계시는데 규정상 1년에 5번이 최대거든요. 그 사이 공백 기간을 더 길게 잡고 오시는게 좋을거 같아요.”

“아?! 그래요? 저도 자주 온다고 느끼긴 했거든요. 아마 헌혈에 중독된 듯 싶어요. 이제는 1년에 1~2번으로 생각 중이라서 다음 헌혈까지는 텀을 길게 두려고 해요. 너무 자주 헌혈을 해도 몸에 좋진 않을 거 같아요.”

멋쩍게 미소를 머금고 헌혈하기 전의 형식적인 절차를 밟아나갔다. 혈압을 재고, 손가락 끝을 뾰족한 바늘로 툭 찌른 다음 혈액형을 확인하고, 현재 건강 상태, 병력 사항, 여행 방문 지역을 확인했다. 여행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들려줘야겠다. 부산대 쪽 헌혈은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그 첫 번째에 관한 이야기이다.

2개월 전 그 당시에 만났던 상담사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분과 동일 인물이시다. 수많은 사람을 마주치시니 내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아무튼, 그때도 평소와 똑같이 상담 내역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는데 여행 방문 지역 문항에서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최근 1년 내에 해외 출장을 베트남으로 가셨네요. 혹시 어느 지역에 계셨나요?”

“2월부터 5월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출장을 다녔어요. 그런데 일은 박닌에서 했었거든요. 거기는 말라리아 해당 지역인가요?”

“잠시만요... 확인해보니 하노이 빼고 주변 지역은 전부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라서요. 전혈은 힘들 거 같고 혈장으로 하셔야될거 같아요.”

“네? 그래요? 출장 갔다 오고 나서 2번 정도 전혈을 했었는데 그건 어떻게 된거죠?”
“네?!?! 전혈을 하셨다고요? 그러면 안되는데... 잠시만요...”

다급한 타자기의 소리만 들어도 상담사가 적잖이 당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색하고 긴장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렇네요. 2번의 전혈을 하셨네요. 이 혈액은 당장 처리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될 거 같아요.”

마치 내가 말라리아에 걸린 환자같이 느껴졌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이상한게도 기억은 잘 안나지만 저번 헌혈 때는 긴 상담 끝에 전혈이 가능하다는 결정이 내려졌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여쭤보기로 했다.

“저번 상담 내역은 기록이 안되어 있나요? 그때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었는데 결국엔 괜찮다고 하셨거든요. 아!!! 다시 말씀드리면 박닌이라는 시골 지역에서 일은 했지만 숙박은 하노이에서 했어요.”

“그래요? 잠시만요. 제가 본사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볼게요.”

상담 시간은 벌써 15분을 경과하고 있었다. 원래는 5분 정도면 끝나도 될건데 이렇게 길어질 줄이야. 상담사께서 본사와 전화를 하고 나서는 숙박지역이 하노이면 전혈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다행이긴 했지만 뭔가 이상하기도 했다.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한 느낌이랄까? 말라리아 위험 지역을 유유자적 떠돌면서 모기에게 쥐어뜯기다가 숙박만 안전지역에서 하면 괜찮다는 뜻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뭐... 내가 말라리아에 걸릴 확률은 현저하게 낮긴 하다. 출장 지역을 오가는 그 수천 명의 한국 사람 중에 아직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회사는 호들갑을 떨면서 그 위험성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출장일로부터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프지 않을 걸 보면 결과적으로 나는 당당히 전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그날은 헌혈 시간의 절반 이상은 상담과 관련된 것이었다. 독특하면서도 나름 흥미진진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글을 쓸 때 헌혈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사색한 것들을 담고 싶었는데 인스타그램의 글자 제한 상 여기서 말을 줄여야겠다. 아쉬움에 입맛만 쩝쩝 다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태양과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