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을 향한 편견
군대를 갓 전역한 후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떠올랐다. 개학 전까지 남아있는 몇 달간의 공백 기간을 누구보다도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PC방으로 달려가 봉사 활동 페이지에 나와 있는 목록들을 눈으로 세심히 훑어나갔다. 일련의 선택지들 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말벗 되어주기에 눈길이 갔다. 주말 오전을 함께 보내게 될 예정이었는데 그 안에는 인형 만들기, 산책, 삼계탕으로 몸보신하기와 같이 세부적인 활동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진정한 봉사에 의의를 두기보다는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혹시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일이 있을지 그 누가 알겠는가.
군대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에 벗어나 자유의 냄새를 좀 맡으면서 내 일상도 동시에 성실함에서 게으름으로 도약해버렸다. 띠리띠띠~!! 섬뜩한 아이폰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떴을 때 늦잠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시계를 허둥지둥 바라볼 때의 그 섬뜩함이란. 마치 씻지 않은 것과도 같은 세안을 하고, 굴러떨어지듯이 약속 장소를 향해 내달렸다. 최종 목적지는 널찍하고도 한적한 ‘부산 시민 공원’.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 숨 고를 틈도 없이 봉사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진행될 프로그램에 대해 친구와 함께 설명을 들었다. 첫 프로그램은 인형 만들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도우미를 상징하는 형광 조끼를 입고 명찰을 목에 걸고서 관계자들을 따라 커다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릴 때 요란스러운 수다의 파장이 즐거운 기운과 함께 뿜어져 나왔다. 그 공간에는 어린아이 같은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얼굴로 대화를 주고받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착석해 계셨다. 약 20명 정도의 인원을 모두 수용하도록 붙어있는 테이블 위에는 인형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봉지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각 테이블 가운데에는 오늘 만들 토끼 인형의 표본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러 개의 천을 덧붙여 만들어진 빈티지 느낌이 물씬 나는 토끼, 그 속살 안에는 하얀 솜뭉치로 가득 채워져 피둥피둥 보기 좋은 살이 올라오고, 얼굴에는 귀여움의 정점을 찍는 깜찍한 단추 2개가 토끼 눈을 대신하고 있었다. 제작 과정도 매우 단순해서 그저 솜을 천에 가득 채우고 바늘로 벌어진 부분을 봉합하고 눈 위치에 단추를 달아주기만 하면 끝이었다. 관계자분의 아주 간단한 안내가 끝난 후 모두 본격적으로 인형 만들기에 들어갔다. 친구와 나는 도우미 역할이었기에 테이블 가장자리를 따라 돌며 배회했는데 그때 할아버지 한 분께서 넌지시 입을 여셨다.
“어이, 학생들!! 그냥 자리에 앉아서 인형 만들면 돼. 가끔 눈이 침침해서 구멍에 실 못 넣는 사람들 있으면 도와주고.”
할아버지 말씀대로 몇 분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큰 도움 없이 손수 제작해 나가고 계셨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게 무색해질 정도였다. 혹여나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시겠지 하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도 토끼 인형을 열중해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주위에 오가는 대화도 어렴풋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망측해라... 이게 토끼여 뭐시여! 가슴이 왜 이리 빵빵혀! 머리가 세 개나 달린 줄 알았네!”
“할멈, 이게 내 취향이여, 취향! 취향은 존중할 줄도 알아야지. 여자는 가슴이 빵빵해야 매력있지! 굴곡지고 얼마나 좋아! 그나저나 할멈도 보니까 토끼 상태가 영 정상은 아니구만.”
“에고?! 지랄 염병하네. 영감이나 잘하쇼! 난 왕년에 잘나가던 내 모습 생각하며 만들고 있거든”
“잉? 그래? 그때도 절벽 가슴이었어?”
“이 할배가 노망났나!!!”
지금은 너무나도 오래되어 기억이 바랬지만 그 때의 연륜이 묻은 말장난들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올 만큼 재미있었다는 느낌이 아직 남아있다. 내가 만들던 토끼에서 시선을 떼고 주위를 좀 둘러보았더니 표준에 가까운 토끼 인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가슴이 너무 큰 인형, 엉덩이가 터질 것처럼 만들어진 인형, 가슴에 단추가 달린 인형, 눈 4개 달린 인형, 토끼라고 주장하시기엔 괴물에 가까운 인형 등등 각각의 인형들은 틀에서 벗어난 개성 있고 창의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하물며 만드는 과정 속의 주고받은 농담들, 자기가 더 잘 만들었다는 유치한 싸움도 그 즐거움을 배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나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 속에 섞여 놀기 시작하고 또 즐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인형 만들기는 마무리가 되고 다음 프로그램인 산책이 시작되었다. 단어만 번지르르한 산책이지 그저 삼계탕 가게를 가기 위한 이동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걷는 속도도 제각각이어서 나는 제일 마지막 순번으로 걷고 계신 할아버지 곁에 있어 드려야 했다. 도움은 한사코 거부하시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아주 작은 소리로 무어라 말을 내뱉으셨다. 드디어 내 손길이 필요한가 싶어 그 말을 들으려고 조금 더 가까이 귀를 기울였다. 내 귀를 울리던 그 한마디는...
“배고파...”
느리지만 힘찬 거동을 더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어르신의 말씀이 사뭇 앙증맞아 보였다. 나이 차이가 상당하지만 마치 또래의 귀여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네, 어르신. 조금만 더 가면 삼계탕 먹을 수 있으니 조금 더 힘내세요!”
그렇게 도착한 삼계탕 가게에선 벌써 음식이 순서대로 사람들 앞으로 나오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그 번잡함 때문에 아무도 나를 신경 쓰고 있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르신들은 미리 상의라도 한 듯이 갓 나온 삼계탕을 자연스레 내 앞으로 전달해주셨다.
“학생 오늘 정말 고생했어! 식기 전에 많이 먹어!”
봉사라고 할 만한 것들을 하긴 했나 의문이 드는 참이었지만 그런 따뜻함과 자상함이 묻어나는 말로 배려를 해주시다니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그 기운을 받아서인지 삼계탕은 유난히 풍미가 좋았다. 뼈에서 살을 발라내며 오늘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세대 차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어르신들의 천진난만함. 그러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배려. 그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한 딱딱하고도 소통 불가능하며 고집불통이라는 깊게 박힌 편견들은 그날을 계기로 안녕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