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그 끝 무렵의 기억

퇴사 절차를 밟으며 받았던 상처

by 이상찬

퇴사를 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홀가분해졌다. 통제된 회사 생활 내에서 벗어나 자유와 도전의식으로 충만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내가 항상 꿈꾸던 바였다. 그렇게 저 거친 세상으로 나가 제2의 인생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물론 이러한 결정은 몇 개월에 걸쳐 고민을 거듭한 뒤 나온 결과이다. 이에 힘입어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과감하게 상사분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선언문을 내놓았다.


‘퇴사 관련해서 절차 진행 중이니, 지금부터 회사 관련된 업무는 진행하지 않겠습니다.’


이 글을 단체 방에 쓸 때 기분이 묘했다. 내 의사를 진정성 있게 표하는 일이 회사 다니는 동안 지금이 최초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상대방의 기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들이 내 기분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처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빈 휴게실에 앉아 있거나 회사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사색에 빠져들었다.


어찌 이리도 쉬울까. 퇴사를 선언하는 순간 회사 주변의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했던 것처럼 허무하게 뚝 끊겼다. 저기 앉아서 열 내어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 곳곳에 보이는 회의실, 휴게실, 매점들은 이제 나랑 상관없는 것들이었다. 그런 생각을 해보니 허탈감이 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열정을 다해 업무를 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천부적으로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나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던 요청들을 거절하지 못했다.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 때문일까? 그에 대응해 내가 감당해야 했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매달 월례회의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강당에 가서 사진기의 셔터를 누르던 일, 회식 자리를 알아보고 정산을 해야 했던 일, 우리 파트의 간식 담당 등과 같은 것들이 기본적인 업무 외적으로 처리해야 했던 짜증 나고도 성가신 것들이었다. 내 한계를 넘어선 업무량에 가끔씩 스스로가 고장나 버린 순간들도 많았다.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었다. 이제 그런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겁게 짓누르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방심도 금물이라고 했던가. 회사에서 나가는 순간까지는 아직 끝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퇴사 전에 이어지는 면담들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무던히도 나를 괴롭혔다. 파트 내 인사 담당, 파트장, 그룹장, 팀장까지 모두 거쳐야 했는데 팀장님을 제외하고는 전부 3번이나 반복해서 면담을 받아야만 했다. 특히 평소에 그들이 전혀 관심 가져오지 않았던 사람에 대해 상담을 하기 시작했던 점이 괴로움의 중심점 역할을 했다. 대화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몇 가지의 미약한 단서로 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하물며 파트 내의 일, 조직 문제로 퇴사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집요하게 화제의 방향을 둘러댔다. 면담의 그 끝은 심적으로 지치고 우울해진 상태가 지속되어 퇴사를 선택했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려 나갔다. 물론 어느 부분은 맞는 말이지만, 업무 분배의 불균형, 상사를 의식한 무의미한 작업과 보고서들, 잦은 해외 출장, 지켜지지 않는 퇴근 시간 등과 같은 부수적인 요인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한 부분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지만 우습게도 그 원인 제공자들이 지금 내 앞에 있는 면담자들이었다. 모든 것에 지쳐 큰 마찰 없이 퇴사하고 싶었기 때문에 침묵을 유지한 채 그들이 하자는 대로 면담기록을 장식해 나갔다. 그렇지만 팀장과 마주했을 때는 그 최악의 정도가 정점을 달해 이 자잘한 면담들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서류에 적힌 몇 문장만으로 내 인생을 판단하고 스스로가 만들어낸 상상의 인물로 나를 몰아세운 뒤 장황하고도 어이없는 설교를 이어나갔다.


“넌 지금 병들고 아픈 거야. 정신적으로 나약하고 아프기 때문에 휴식이나 치료를 받아야 해”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열정을 다해서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공부를 한다니. 나는 휴가 내서 4일 동안 집에 박혀 책을 읽곤 하는데 넌 그 정도라도 해본 적 있니? 그러면 인문학 공부한다는 소리 자체를 하지마.”

“작가나 미술 관련된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고? 지금 나가서 너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니? 최소 몇 년 이상은 해야 하는데. 잘하는 거랑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른 거야. 그런 건 대충 취미 삼아 하는 것들이야. 넌 잘하는 것을 해야만 해”


나에게 제대로 된 발언권 하나 주지 않고서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을 내세워 끊임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나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오만과 편견이 깊숙이 내재 된 권위적인 말들만 쏟아냈다. 내가 살아온 전반적인 인생이 송두리째 모욕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1시간 정도 그 대단한 설교를 듣다 보니 진이 완전히 빠졌고 두통도 동반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빨리 끝났으면 싶어 저 위엄 어린 말에 맞받아치며 한마디 거들었다.


“저는 이 회사에 단 1초라도 있기 싫습니다. 작가나 미술이 단순히 취미로서만 취급된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들 모두가 어른이 된 제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라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그냥 싸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팀장님은 말을 중간에 자른 게 언짢았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래? 난 최선을 다했다.”


그러곤 대충 휘갈겨 채워지는 싸인.


최선? 무엇에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일까?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최소한의 노력은 했을까? 아니면 내가 퇴사하면서 올해 있을 승진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끝까지 위로나 격려를 받지 못했다. 썩 유쾌하지 않았던 퇴사 과정들은 끊임없이 냉소와 조소를 던지면서 아직 내 마음속에 가시처럼 박혀버렸다. 가끔씩 그 가시가 무심결에 튀어나와 나를 엄청난 고통 속에 몰아넣고 끝내 울음을 쏟게 만들곤 한다. 진심을 담아 관심을 기울여 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울까? 아직도 그 점은 풀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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