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정말 상대적입니다.
곁에 있기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과 함께 할 때면 시간이 무한정 늘어나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인데 반해, 같이 있다는 상황 자체만으로도 안락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야속할 정도로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만약 시간이라는 것을 제 손으로 어찌할 수만 있다면, 남은 미래의 시간을 한 뭉텅이를 잘라내어 지금 이 순간에 덕지덕지 발라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 머릿속은 항상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바람의 미세한 흔들림이나 피부결에 숨어있는 잔털까지도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쉴 새 없이 눈꺼풀의 셔터를 찍어댑니다. 그러고서 만들어진 이미지의 뚜렷한 잔상을 앨범 속에 고이 넣어둡니다. 하물며 거대한 인생을 거쳐 나오는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들과 고유의 생각들도 놓칠세라 수기로 남겨 일기장 형태로 모아둡니다. 모든 것을 안고 가고 싶다는 간절함이 느껴지시나요?
그렇지만 이내 망각이라는 자가 나타나 횡포를 부립니다. 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슬그머니 기억의 조각들을 제멋대로 흩트리거나 훔친 후 달아나 버립니다.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범죄현장을 볼 때면 아쉬움과 허탈감이 몰려옵니다. 그 몹쓸 녀석을 마주치기만 한다면 여태 쌓아놨던 분노를 모아 얼굴을 향해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날려줄 생각입니다. 아마 힘이 워낙 강력해서 달나라까지는 곧장 치솟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시간의 냉엄함과
망각의 무자비.
그렇지만 그 덕분에
지나온 날들이 오늘도 또 그립고,
앞으로의 날들이 오늘도 역시 설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