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나 전세금 줄돈 없어

by 스윗
"새댁.
전세계약 연장 못해요.
이번에 우리가 그 집 들어가 살 거야."


임대인의 전화 한 통이

밑도 끝도 없는 용기를 가져 주었다.


"자기야~
임대인이 재계약 안 한대.

우리 아파트로 이사 가자.
거기 가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난 행복해지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내 집.

그곳에서 살면

힘겹게 등기 친 내 아파트가

이제는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았다.


"이번 계약을 끝으로 저희가 입주하려고요.
저희도 임대인이 들어온다고 해서요"

어렵게 꺼낸 내 말은 곧 무색해졌다.


"이런 게 어딨어요.
저희 10년 살 생각으로 이사 온 건데."

"저희 남편이 화가 많이 났네요.
부동산 수수료, 이삿짐센터 비용까지
이사하는데 천만 원 가까이 들어가요."

뉴스에서 봤다며 말을 하는 임차인의 말에 기가 찼다.


"돈 먼저 받고 전출할게요.
그래야 안심이 되어서요"

대출을 받기 위해 전출신고를 부탁한 내 말에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전세대출받아야 하는데
지금 사는 임차인이 돈을 먼저 받아야 전출신고 하겠대요.
일이 복잡해졌어요."


2년 전,

전세대출을 받기 위해

동동 거리며 전화했던 그 사람이었다.


내 자존심이었다.

구걸하며 천만 원을 주느니

어떻게 서든 돈을 마련해야 했다.


내 집이라 인테리어까지 하며

꿈에 부풀어 이사하던 날.


"새댁. 나 전세금 줄돈 없어.

나중에 주려고 했지."


"부동산 양반.

여기 뭐 들어선다며.

얼마나 오르려나?"


좋은 대학까지 나와

품위를 유지하던 임대인 할머니는

날 실소케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 길은 끝없이 거칠기만 했다.


등기부등본에 내 이름이 박혔을 때

나는 인생을 이긴 기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고상한 임대인과 영악한 약자의 탐욕 사이에 낀,

이름만 거창한 사람일 뿐이었다.




작가의 한 줄

임차인은 전세금 반환 전까지 점유 유지 권리가 있어 전출 의무는 없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서로 협의해 전출을 먼저 진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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